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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순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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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 전 대통령 하면 뭐가 생각나는가. 아마도 많은 사람은 북방정책을 말할 것이다. 또 다른 사람들, 주로 수도권에 사는 사람들은 200만호 주택건설을 떠올릴 것이다. 1987년 체제, 다시 말해서 5년 단임 직선대통령제 아래에서 역대 대통령들은 숙명적으로 5년이란 짧은 기간 동안 무엇인가 자신만의 치적을 남기기 위해서 몸부림쳤다.
또 따져보자. 노 전 대통령의 후임인 김영삼(YS) 전 대통령 하면 군내 사조직인 하나회 척결과 전격적인 금융실명제 실시가 생각난다. 물론 부작용과 후폭풍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YS 덕분에 우리는 군사쿠데타의 공포로부터 자유롭다. 금융실명제 덕분에 부정부패가 상당 부분 근절된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IMF 환란의 국가적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했고 IT산업의 기반을 마련했으며,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대북포용정책을 실천으로 옮겼다. 물론 그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도 없지 않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정치의 탈(脫)권위주의를 추진하여 국민참여시대를 열었고 한·미FTA를 적극 추진했으며, 제주도 해군기지 건설을 추진하는 용기를 보여주었다.
직전 대통령인 이명박 전 대통령의 5년은 어떤가. 아직까지 논란의 소지는 없지 않으나 4대강 사업을 통해 가뭄과 홍수에 시달리던 우리나라에 체계적인 치수사업의 신기원을 이루었다. 또 전 세계가 금융위기에서 허덕일 때 상당히 공격적인 재정정책을 통해서 거의 유일하게 지속적인 성장을 기록해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인 것이 사실이다.
자, 이쯤에서 재미있는 여론조사 결과를 보자. 노태우 전 대통령(1988년) 이후 매주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대한 국민의 지지율을 조사해온 한국갤럽의 자료에 따르면, 역대 대통령들의 임기 3년차 말의 성적(지지율)은 노태우(25%), 김영삼(32%), 김대중(30%), 노무현(23%), 이명박(47%)이었다. 본격적인 레임덕에 빠져 들어가는 순간이 바로 3년차에서 4년차로 넘어갈 때다.
박근혜 대통령의 성적은 어떨까. 박 대통령은 집권 1년차 1분기 42%의 지지율을 보여 역대 대통령 중에서 출범 초기 최하위를 기록했다. 그런데 지금 3년차 4분기의 성적은 43%로 역대 대통령 중 2위를 기록하고 있다. 다른 대통령들과는 달리 최고(60%)와 최저(34%)의 편차도 가장 작다. 그 비결이 무엇일까. 대구·경북(TK)을 중심으로 콘크리트 지지층이 버텨주기 때문이다.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박근혜 대통령의 지난 3년 동안 생각나는 게 무엇인가. 사람들마다 다를 수 있으나 국정원 댓글, 세월호 참사, 메르스 파동, 개성공단 폐쇄, 북한의 핵실험, 필리버스터와 같은 부정적인 단어와 흙수저니 헬조선이니 비관적인 경제상황을 상징하는 단어만이 맴도는 것은 나만의 느낌일까.
박 대통령은 초조해질 것이다. 자신이 잘못해서가 아니라 상황이 그렇게 꼬여가다 보니 지난 3년이 이렇게 지나갔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제 임기는 채 2년도 남지 않았는데 해결해야 할 난제는 첩첩이 쌓여있으니, 압축적으로 무엇인가 자신만의 업적을 남겨야할 텐데 말이다. 힘을 두 배로 써도 모자랄 판에 주변에서는 슬금슬금 눈치를 보기 시작하니 억장이 무너질 지경이다.
박 대통령은 선거의 여왕답게 이번 4·13 총선을 국정장악력을 회복하는 계기로 삼으려는 것으로 보인다. 상식적으로는 무리한 승부수를 걸어서라도 레임덕 현상을 최소화하고 국정운영의 주도권을 강화하려고 한다. 물론 자신의 뜻대로 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그냥 이대로 장강의 뒷물에 밀려갈 수는 없다는 오기(傲氣)마저 느낄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지난 주 박 대통령의 대구·경북(TK) 방문을 보면, 왜 달마가 동쪽으로 갔는지 알 수 있다. 정말 어려울 때 찾는 곳이 바로 고향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