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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순 정치평론가 |
기절할 뻔했다. 지난달 말 정부의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 방침 소식을 접하고는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경제상황이 원체 좋지 않고 또 영국의 브렉시트(유럽연합 탈퇴) 결정으로 추경이 불가피한 측면은 있다. 추경 편성 자체를 문제 삼자는 것이 아니다. 정부는 이번 추경을 초과세수를 재원으로 편성하기 때문에 국채(國債)를 발행하지 않는다고 자랑스럽게(?) 발표했다.
여당인 새누리당 의원들이 발끈했다. 성장이 주저앉았다면서 어떻게 초과세수를 9조원이나 거두나. 올해 1~4월 중의 국세수입이 전년도 동기 대비 18조원이 늘어났다는 정부발표를 보고는 분통을 터뜨린다. 큰 선거를 앞두고는 음주단속도 쉬쉬하는 판인데, 아예 선거를 망치려고 작정을 했던 모양이라며 정부를 강하게 질타하고 있다.
문득 조원동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 떠오른다. 박근혜정부가 출범한 2013년 조 수석은 조세개편안에 대해 “세금을 걷는 것은 거위가 고통을 느끼지 않도록 살짝 빼내는 것”이라고 했다. 프랑스 루이14세의 재무장관 콜베르의 말이란다. 찾아봤다. 콜베르가 그런 말을 했는지. 원문은 더 끔찍하다. “거위의 깃털을 최소의 소리를 내면서 최대로 뜯어내는 것이 세금의 예술이다.”
지난해 국세수입은 세입예산(215조7천억원)보다 2조2천억원이 더 걷혔다. 증세는 안 했다지만 소득세만 전년 대비 7조4천억원(13.9%) 늘었다. 4년 만에 세수결손을 벗어났다. 경제는 악화되는데 세 부담은 커지고 있는 것이다. 작년 초 담뱃값을 단번에 2천원가량 올렸다. 4천500원 담배 한 갑에는 세금만 3천318원(73.7%)이다. 이 중 신설된 개별소비세가 594원(13.2%)이다. 지난 한 해 담뱃세가 11조원, 이 중 개별소비세만 1조7천억원을 거두었다.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무섭다는 공자님 말씀이다. 공자는 무엇을 가혹한 정치로 봤을까. 바로 세금(稅金)이다. 그것도 마른 수건에서 물을 짜내듯 쥐어짜는 세금, 콜베르가 말하는 거위(국민)의 비명을 모른 척하면서 최대한 뜯어내는 깃털(세금) 말이다.
근대 국가는 바로 이 호랑이(세금)로부터 국민을 지키는 수호자로서 의회를 채택했다. 민주주의는 권력과 세금과의 싸움이다. 미국 독립전쟁도 차(茶)에 대한 과도한 과세를 두고 식민지 주민들이 들고 일어난 것이다. 우리나라도 조선말 ‘삼정(三政)의 문란’에 참다 못한 백성들이 들고 일어난다. 홍경래의 난이요, 갑오동학혁명이 바로 그것이다. 1977년 박정희 정권은 부가가치세를 도입하지만, 엄청난 조세저항으로 부마항쟁과 10·26사태로 귀결된다.
우리와 정치문화가 비슷한 일본의 예를 보면 세금의 무서움을 보다 확실하게 알 수 있다. 1989년 우리의 부가가치세 성격의 소비세(3%)를 처음 도입한 다케시타 정권, 1997년 소비세율을 5%로 올린 하시모토 정권, 2012년 순차적 소비세율인상(2014년 8%, 2015년 10%)을 결정한 노다 정권은 각각 유권자들의 조세저항에 부딪혀 정권을 잃었다.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다.” 유승민 의원이 지난해 국회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한 말이다. 말은 맞는 말이다. 박근혜정부의 복지정책(135조원)을 증세 없이 비과세 감면, 세출구조조정 등으로 충당 가능하다는 정부에 대한 일침이었다. 그 불가능에 가까운 공약을 지키려고 증세(주로 법인세) 없이 이런저런 방식으로 쥐어짜는 것이다. 그리고 그에 대한 조세저항으로 나타난 것이 4·13총선에서의 민심이반이 아닐까.
분노의 시대다. 특히 양극화에 대한 거부감이 극에 달해 있다. 10대 대기업 사내유보금이 652조원에 이른다. 그런데 영세상인, 월급쟁이들은 못 살겠다고 비명을 지른다. 세정(稅政)을 바로 잡지 않는다면 내년 대선에서 국민들은 표(票)로써 심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