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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순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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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최고(最古)-최고(最高)의 여대(女大)인 이화여대에 야단법석이 났다. 고졸 직장인이나 30세 이상의 경력단절여성(경단녀)을 대상으로 한 미래라이프대(평생교육 단과대) 설립을 두고 이대 총학생회와 학생들은 일주일째 농성을 벌이고 있다. 급기야 지난 주말 경찰병력 1천여명이 캠퍼스에 투입되어 사실상 감금상태의 교직원들을 구출해내기도 했다.
총학생회와 학생들은 학교가 ‘학위 장사’를 한다면서 절대 미래라이프대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아우성이다. 학교 측은 평생교육 차원에서 오히려 건학(建學)의 이념과도 합치한다면서 물러설 수 없다고 한다. 평생교육 단과대는 이대뿐 아니라 이미 10여 곳 대학교가 신청해 선정돼 있다. 그런데 유독 이화여대에서만 학생들이 들고 일어나서 난리가 벌어진 것이다.
“나 이대(梨大) 나온 여자야.” 10년 전 영화 ‘타짜’에서 정 마담(김혜수 분)의 그 유명한 대사다. 비록 지금은 사기도박판에서 꽃 노릇을 하고 있지만 그래도 한때는 이대를 다녔다는 빛바랜 자부심이 묻어난다. 그럴 만도 하다. 우리나라 대기업 임원, 고관대작, 변호사, 의사 등 이른바 상위 1%의 배우자 중 이대를 졸업한 사모님들이 상당수일 테니 말이다.
“민중은 개·돼지다. 99%의 국민이 민중이다. 어차피 다 평등할 수 없기 때문에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바로 지난달 교육부 나향욱 정책기획관의 말이다. 지금 들어도 화가 난다. 아무리 불평등한 사회를 인정해야만한다 하더라도, 개·돼지 취급을 당하면서, 그저 너희 민중은 주면 주는 대로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그의 인식에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다.
“왕후장상(王侯將相)의 씨가 따로 있나?” 2천200년 전 진시황의 진나라를 무너뜨린 진승의 외침이다. 머슴으로 태어나 온갖 천대와 핍박을 받았지만 결국 반란을 일으켜 철통같던 진나라를 허물고 만다. 진승의 능력이 탁월해서일까? 아니다. 당시 중국 천지는 이미 숨 막히는 신분제 사회에 민중은 폭발 일보직전이었다. 진승은 다만 용기 있게 불을 지폈을 뿐이다.
우리나라 헌법 11조2항은 ‘사회적 특수계급의 제도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어떠한 형태로도 이를 창설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 우리나라에 특수계급이 없다고, 보이지 않는 칸막이가 없다고 믿는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금수저-흙수저’의 차별들이 우리 사회 곳곳에서 일상다반사로 목격되고 있는데 말이다.
분명 우리 사회가 정상은 아니다. 최소한 1997년 IMF 외환위기 이전까지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신자유주의와 철저한 개인주의가 판을 치면서 이제는 최소한의 염치도 없다. 적자생존을 넘어서서 이제는 있는 자들의 없는 자들에 대한 수탈이 공공연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면서도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라는 있는 자들의 횡포가 도를 넘어서고 있다.
라면 상무, 땅콩 회항, 남양유업 밀어내기 등 있는 자들의 갑질도 서러운데, 이제는 없는 자들 간에도 갑과 을로 나뉘어 갑질이 횡행한다. 더 큰 문제는 99%를 무기력과 체념으로 몰아넣는 1%, 아니 0.1%의 행태다. 바로 진경준 검사장 사태에서 드러난 김정주 대표,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의 경우다. 보이지 않는 수많은 칸막이들이 우리 사회를 철저하게 분절화, 계급화하고 있다.
정치권에서 말하는 ‘경제민주화’도 사회양극화를 어떻게 줄여나갈 것인가, 어떻게 하면 뒤처진 자들과 함께 갈 것인가의 고민이다. 하지만 그도 말뿐이다. 결국 우리 사회는 ‘어어’ 하면서 개미지옥으로 빨려 들어가는 꼴이다. 문제점도 알고 해답도 안다. 이를 행동으로 옮길 에너지가 부족할 뿐이다. 만약 이번 이대 사태가 ‘어찌 실업계 고등학교 나온 애들과 같은 반열에 서리오’ 하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라면, 이는 우리 사회 공동체의 붕괴를 예고하는 적색등이 켜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