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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순 정치평론가 |
현직 대통령이 범죄 피의자로 입건됐다. 온 국민이 치를 떨고 있는 ‘최순실 게이트’의 사실상 주범(主犯)으로 말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변호인과 청와대 대변인은 검찰수사 결과가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극구 부정한다. 검찰의 수사가 공정하지도, 정치적 중립을 지키지도 않았다며 향후 검찰의 수사를 전면 거부했다. 다만 앞으로 구성될 ‘중립적’ 특검에 대비하겠다고 한다.
지금은 박 대통령의 말이라면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기지 않는다. 역대 정권에서 대통령을 둘러싸고 온갖 추문이 끊이지 않았지만, 이번만큼 국민들에게 모욕감과 배신감을 준 적은 없었다. ‘대한민국과 결혼했다’는 그의 진정성을 믿었기에, 조국 근대화의 상징인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기에 아버지의 반의 반이라도 해줄 것이란 믿음을 가졌기 때문이다.
필자는 얼마 전까지 ‘질서 있는 하야’를 현 난국을 타개하는 해법으로 제시한 바 있다. 최소한의 권위와 정당성을 상실한 대통령이 국가를 이끌어갈 수 없기 때문에, 대통령이 퇴진 로드맵을 제시하고 정치권은 그에 따라 새로운 리더십(정권)을 만들어 가는 방안이었다. 하지만 현직 대통령이 피의자로 입건된 초유의 일이 벌어지면서 이제 모든 것이 달라졌다.
청와대는 “(퇴진은 없다) 차라리 탄핵하라”고 버티고 있다. 그동안 어지럽게 각종 해법을 내놓았던 야(野) 3당도 월요일 ‘탄핵’을 당론으로 결정했다. 이제는 ‘탄핵’을 중심으로 난국 해결의 방정식을 풀 수밖에 없다. 일단 탄핵소추를 통한 해결로 의견이 모인 것은 수습의 가닥을 잡아간다는 측면에서 바람직하다. 하지만 청와대와 야당의 속셈이 달라도 아주 달라 보인다.
무소속을 포함한 야당(현재 172석)이 여당 일부의 도움(28석 이상)을 받으면 국회 본회의에서 탄핵소추안을 통과시킬 수 있다. 그 순간 대통령의 직무는 정지되고 현직 국무총리가 헌법에 따라 대통령권한대행이 된다. 헌법재판소에서 심리가 진행되는 동안은 물론이고, 만약 헌재에서 탄핵이 결정되면 조기 대선까지 60일 동안 대통령권한대행의 막중한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지금 야당은 딜레마에 빠졌다. 당초 박 대통령이 두 차례(10월25일 및 11월4일) 대국민사과를 하고 11월8일 국회로 달려와서 사실상 백기를 들었다. 국회가 총리를 추천해주면 총리에 임명하고 총리에게 헌법상 내각 통할권을 다 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야 3당은 그다음 날인 11월9일 대표회동을 통해 박 대통령의 제안을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일축했다.
야당은 막다른 골목까지 박 대통령을 밀어붙였다. 즉각 하야하라, 군(軍)통수권과 계엄권 그리고 인사권도 내놓으라고 압박했다. 그런데 막상 탄핵정국으로 가려니 헷갈리기 시작한다. 설사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을 통과시켜도 황교안 국무총리가 대통령권한대행이 된다. 야당으로서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카드다. 그래서 지금 탄핵을 추진하는 한편 국회에서 국무총리를 만들어 보려고 전전긍긍이다.
그런데 이게 말같이 쉽지 않다. 청와대는 11월8일의 대통령 제안을 이미 야당이 거부했고, 또 대통령의 퇴진을 전제로 한 거국내각 총리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게다가 야권 내부의 사정도 결코 녹록지 않다. 유력한 대선주자들은 자기 쪽 인물을 새로운 국무총리로 앉히려 들기 때문에 설사 대통령이 추천해보라고 해도 단일안을 만들기가 쉽지 않다.
타협의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 지금 지명자 상태인 김병준 총리 내정자에 대한 임명동의절차에 들어가는 것이다. 김 내정자는 세상이 다 아는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사람이다. 그동안의 경륜과 최근에 보여준 뚝심도 결코 만만치 않다. 다만 어수선한 와중에 지명(11월2일)되는 통에 야권이 괘씸하게 생각할 뿐이다. 엄중한 시국에선 최선이 아니더라도 최악을 피하는 지혜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