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 천 (昇天)
이수익
내 목소리가
저 물소리의 벽을 깨고 나아가
하늘로 힘껏 솟구쳐 올라야만 한다.
소리로써 마침내 소리를 이기려고
가인(歌人)은
심산유곡 폭포수 아래서 날마다
목청에 핏물어리도록 발성을 연습하지만
열길 높이에서 떨어지는 물줄기는
쉽게 그의 목소리를 덮쳐
계곡을 가득 물소리 하나로만 채워 버린다.
그래도 그는 날이면 날마다
산에 올라
제 목소리가 물소리를 뛰어넘기를 수없이 기도하지만,
한 번도 자세를 흩트리지 않는
폭포는
준엄한 스승처럼 곧추앉아
수직의 말씀만 내리실 뿐이다.
끝내
절망의 유복자를 안고 하산한 그가
발길 닿는 대로 정처없이 마을과 마을을 흘러다니면서
소리의 승천을 이루지 못한 제 한(恨)을 토해냈을 때,
그 핏빛 소리에 취한 사람들이
그를 일러
참으로 하늘이 내리신 소리꾼이라 하더라.
어떤 이는 한 점에서 우주를 그리고, 어떤 이는 한 촉(觸)에서 우주를 깨닫고, 어떤 이는 한 음(音)에서 우주 묘음을 듣는다. 일체만물이 다 신묘다. 혹여 이것이 답이 아니면 어떠리. 수억 만 년 이승과 저승을 돌며 태어나고, 돌아가고, 또 생겨나는 가운데 무지한 생령의 물리가 트이면 한바탕 해탈도 맛보는 것이다.
1942년 경남 함안 출생인 이수익의 시「승천(昇天)」은 득음해 가는 여정을 한 여류 명창의 뼈 깎는 예술혼을 통해 시로써 어떻게 언어화 되는지 명징하게 보여준다.
「昇天」의 자취를 따라가 보면, 소리가 풀리니 가인이 되고, 가인이 되니 폭포수 되고, 폭포수 풀리니 준엄한 물의 수직 말씀이 되살아나고, 수직의 말씀이 절망의 피 토하니 비로소 소리가 승천을 이룬다. 이런 시의 역설 고리는 가히 일체만상이 다 한 법에서 나와 한 법으로 흘러듦을 알겠다.
"내 목소리가 / 저 물소리의 벽을 깨고 나아가 / 하늘로 힘껏 솟구쳐 올라야만 한다."는 저 예술혼의 무서운 광기는 대체 어디서 나오는 걸까. 사즉생(死卽生), 죽기로 각오한 곳에서 정령 삶이 나오는가. 그 혹독한 아이러니의 무서운 시련은 왜 인간만이 추구해야만 하는 숙명일까. "소리로써 마침내 소리를 이기려고 가인(歌人)은 / … / 목청에 핏물어리도록 발성"을 연습한다. 피는 피를 부르고, 소리는 소릴 부르고, 물은 물을 부르고, 불은 불을 부른다 했는가. 인간이 인간 속 뒤엉킨 욕망의 덩어리를 다 벗어야 비로소 텅 빈 공음(空音) 소리가 고고한 인간 울림통에 닿아 열리는 까닭이 예 있던가.
의성(醫聖) 허준은 말했다. 인간이 하늘의 득음을 얻으려고 소리치다 목통에서 울컥거리며 치받치는 핏덩이를 잠재우려면, '정월 푸른 대나무 겉껍질 벗기고 똥통에 박아, 똥물이 스며들게 한 인중황(人中黃)과 10세 전후 남아의 소변 마시면 해독, 눈 밝음, 고운 목소릴 얻을 수 있다.' 했으니, 가장 질박한 인간 소리 들으려면 피 토해야 한다. 가장 더럽다는 똥오줌 목줄에 넘겨봐야 한다. 그러고서야 생과 사, 극과 극이 맞물려 구멍구멍마다 오만가지 묘한 소리가 되어 울려 나옴을 안다.
<해설가>김동원(사진)
약력
경북 영덕 출생.
1994년『문학세계』`시 부문’ 신인상 수상으로 등단
1997년 제 1시집『시가 걸리는 저녁 풍경』출간
2002년 제 2시집『구멍』출간
2004년 제 3시집『처녀와 바다』출간
2007년 동시집『우리 나라 연못 속 친구들』출간
2011년 시 에세이집『시, 낭송의 옷을 입다』출간
2014년 평론집『시에 미치다』출간
2015년 대구예술상 수상
현, 한국시인협회, 대구문인협회원. 대구시인협회 이사.
『텃밭시인학교』시창작교실 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