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잎의 여자
오규원
나는 한 여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한 잎같이 쬐그만 여자, 그 한 잎의 여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그 한 잎의 솜털, 그 한 잎의 맑음, 그 한 잎의 영혼, 그 한 잎의 눈, 그리고 바람이 불면 보일 듯 보일 듯한 그 한 잎의 순결과 자유를 사랑했네.
정말로 나는 한 여자를 사랑했네. 여자만을 가진 여자, 여자 아닌 것은 아무것도 안 가진 여자, 여자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여자, 눈물 같은 여자, 슬픔 같은 여자, 병신 같은 여자, 시집 같은 여자, 그러나 누구나 영원히 가질 수 없는 여자, 그래서 불행한 여자.
그러나 영원히 나 혼자 가지는 여자, 물푸레나무 그림자 같은 슬픈 여자.
「한 잎의 여자(女子)」속의 화자인 “나”는 “영원히 나 혼자 가지는 여자”를 간절히 원했다. 이 시는, 한때 “나”가 사랑한 여자는 “물푸레나무 한 잎같이 쬐그만 여자”라고 말한다. 이렇게 시 속에 식물성의 이미지를 직접 사랑한 여자에게 직유(直喩)한 것은 그녀가 그만큼 세상에 오염되지 않은 순결한 여자임을 은밀히 드러내기 위한 뜻이다.
“솜털”이란 미세한 시구는 읽는 이로 하여금 맑은 영혼을 가진 처녀의 순수성을 떠올리게 하는 미묘한 느낌을 준다.「한 잎의 여자(女子)」는 혼자 중얼거리는 듯한 독백의 시다.
“그리고 바람이 불면 보일 듯 보일 듯한 그 한 잎의 순결과 자유”에서도 언뜻 보이듯, 평생 누구에게도 밝힐 수 없는 첫사랑의 아픔이 화자의 깊은 회한과 쓸쓸함에 젖어 있다. 1941년 경남 삼량진에서 출생한 오규원은 2007년 2월 2일 세상을 떠났다.「한 잎의 여자(女子)」는 1981년『문학과 지성사』에서 출간된 그의 시집『이 땅에 씌어지는 서정시(抒情詩)』속에 수록되어 있다.
30·40십대 도시 여자들에게 널리 암송되는 이 작품은 “영원히 나 혼자” ‘그 여자’를 가지기를 원하는 “나”의 지나친 애착이 도리어 이 시를 읽는 여인들로 하여금 이 시의 매력에 가슴을 설레게 하는 이유가 아닐까.
한국 현대시에서 '꽃'의 이미지가 김춘수를 만나 여성에 대한 상징의 뜻을 훨씬 내면화시켰다면, 오규원의 ‘물푸레나무 그 한 잎의 솜털'은 현대시 속에서 순결한 '여성성'을 상징하는 이미지로 바꾸어 놓았다.
흰 빛깔의 수피가 무늬지어 있는 물푸레나무 잎의 뒤쪽 면에 숨어있는 솜털은 젊은 여자의 피부에 난 보송한 잔털을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 화자인 “나”는 내면의 순결성을 한 남자를 위해 오롯이 지키고 사는 “눈물 같은 여자, 슬픔 같은 여자, 병신 같은 여자”, “그래서 불행한 여자”를 혼자만 가지려고 하는 남성의 묘한 모순된 의식구조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한 잎의 여자(女子)」는 한 남자의 과거 속에서 영원히 지울 수 없는 첫사랑의 흔적이며, 감미로운 탐미와 순정적 애상의 덫에 갇혀 빠져나오지 못한 한 중년 남자의 심리를 실감나게 잘 그려낸다.
<해설가>김동원(사진)
약력
경북 영덕 출생.
1994년『문학세계』`시 부문’ 신인상 수상으로 등단
1997년 제 1시집『시가 걸리는 저녁 풍경』출간
2002년 제 2시집『구멍』출간
2004년 제 3시집『처녀와 바다』출간
2007년 동시집『우리 나라 연못 속 친구들』출간
2011년 시 에세이집『시, 낭송의 옷을 입다』출간
2014년 평론집『시에 미치다』출간
2015년 대구예술상 수상
현, 한국시인협회, 대구문인협회원. 대구시인협회 이사.
『텃밭시인학교』시창작교실 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