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정부가 내년도 정부 총지출을 올해 대비 7.1%(28조 4000억 원) 늘어난 429조 원으로 확정했다. 예산안은 정부 정책과제의 차질 없는 이행, 사람 중심 지속성장 경제 구현을 중점적으로 담았다.
특히 문재인정부의 핵심 과제인 일자리와 복지 예산을 전체 예산의 3분의 1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반면, 이미 포화단계에 진입한 사회간접자본(SOC) 등 기존 사업에 대해 강력한 지출 구조조정을 실시했다. 정부는 지난 8월 29일 국무회의에서 이러한 내용을 골자로 한 2018년도 예산안을 확정하고 9월 1일 국회에 제출했다.
복지 관련 예산 146.2조… SOC 예산은 20% 삭감
분야별로 보면 ‘사람 중심의 성장’에 투자를 확대해 일자리를 포함한 보건·복지·노동 예산이 12.9% 늘어난 146조 2000억 원, 교육 예산이 11.7% 증가한 64조 1000억 원으로 두 자릿수 증가율을 기록했다. 복지와 교육 예산을 합하면 210조 원이 넘어 전체 예산의 절반(49%)가
량을 차지했다.
반면 물적 투자 축소 방침에 따라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은 20% 삭감된 17조 7000억 원, 문화·체육·관광 분야 예산은 6조 3000억 원으로 8.2% 줄어들었다. 정부는 3단계에 걸쳐 재정혁신을 추진한다. 올해부터 시작된 1단계에서는 강도 높은 지출 구조조정으로 재정의 선
제적·적극적 운용에도 국가채무비율은 40%를 넘지 않는 등 재정건전성은 오히려 소폭 개선될 것으로 전망된다.
내년 예산안은 5년간 178조 원에 이르는 문재인정부 국정과제 재정투자계획의 첫해 소요분인 18조 7000억 원을 차질 없이 반영했다. 월 10만 원 아동수당, 신혼부부 공공임대주택, 노인 기초연금 인상 등에 따른 소요재원을 빠짐없이 편성했다.
정부는 구체적으로 내년 예산안의 중점 편성 방향을 ▲일자리 창출 및 질 제고 ▲소득주도 성장 기반 마련 ▲혁신성장 동력 확충 ▲국민이 안전한 나라 ▲인적자원 개발 등으로 잡았다. 12개 분야별 재원 배분을 보면, 보건·복지·노동 등 8개 분야 예산이 증가했고, SOC와 문화, 환경, 산업 등 4개 분야는 감소했다. 증가율이 가장 높은 분야는 보건·복지·노동이고 이어 교육, 일반·지방행정, 국방, 외교·통일 순이었다.
일자리 예산 19.2조 투입… 중앙직 공무원 1만 5000명 채용
보건·복지·노동 예산은 일자리 창출과 저소득층·취약계층 소득기반 확충, 서민 생활비 경감 등을 위해 12.9% 늘어난 총 146조 2000억 원을 책정했다. 이 중에서 일자리 창출을 지원하기 위한 예산은 19조 2000억 원으로 12.4%, 청년 일자리 예산은 3조 1000억 원으로 20.9% 증액했다.
정부는 중앙직 공무원 1만 5000명을 충원하고 기간제의 무기계약직 전환, 청소·경비·시설관리 용역근로자를 직접 고용하는 등 공공 일자리를 확충한다. 중소기업이 청년 3명 신규채용을 하면 3년간 1명의 임금을 지원하는 중소기업 청년 추가 고용, 3개월간 월 30만 원을 주는 청년구직촉진수당 등 민간 일자리 창출 부분에도 예산을 대거 배치했다.
교육 예산도 크게 늘었다. 교육 예산은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이 올해 42조 9000억 원에서 내년 49조 6000억 원으로 15.4% 늘어나 총 64조 1000억 원이 책정됐다. 일반·지방행정 예산 배정액도 69조 6000억 원으로 10% 늘어난다. 이 중 지방교부세는 46조 원으로 12.9% 증액됐다.
교육 분야 예산이 크게 늘어난 이유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이 49조 6000억 원으로 전년보다 15.4% 증가했기 때문이다. 아울러 어린이집 누리과정 전액 국고 지원, 반값등록금 수혜 대상 확대, 해외유학 및 연수 기회 확대 등에도 예산을 집중 투입했다. 정부는 이에 대해 교육
이 ‘희망 사다리’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공공성을 강화했다고 설명했다.
국방 예산 43조 1000억 원은 자주 국방 역량을 강화하고 군 장병의 생활여건 개선을 추진하면서 6.9% 늘어났고, 외교·통일 분야 예산도 5.2% 늘어난 4조 8000억 원이 책정됐다.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내년 국방 예산안이 지난 2009년 이후 9년 만에 가장 큰 폭(6.9%)으로 오른 43조 1177억 원으로 편성됐다.
국방 예산 6.9% 증가 43.1조
국방 예산 증가율은 노무현정부 시절 평균 8.9%였던 데 비해 이명박정부에선 5.2%, 박근혜정부에선 4.1% 수준으로 낮아졌다. 때문에 이번 국방 예산안 증가율은 문재인정부가 국방 분야에 대한 중요성을 높게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문재인정부는 올해를 시작으로 2021년까지 연평균 5.8%의 국방비 인상을 추진한다는 방침을 세운 만큼, 2021년 국방 예산은 50조 40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방 예산안을 세부적으로 보면 방위력 개선비는 지난해보다 10.5% 증가한 13조 4825억 원, 전력운영비는 5.3% 오른 29조 6352억 원이다. 특히 방위력 개선비 중 북한의 핵·대량살상무기(WMD) 위협에 대응한 예산은 4조 3359억 원으로 작년보다 13.7%나 올랐다. 방위력 개선비는 날로 증대되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비하기 위해 킬체인과 한국형 미사일 방어체계, 대량 응징 보복 등 ‘3축 체계’를 2020년 초반까지 구축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통일·외교 분야 예산안은 통일 분야가 1조 2735억 원, 외교 분야가 2조 2694억 원으로 편성됐다. 통일 분야에서는 문재인정부 국정과제에 포함된 통일센터(15억 원)와 통일국민협약(2억 2000만 원) 등이 신규 편성됐다.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을 뒷받침하기 위한 예산은 약 2500억 원 규모로 짜였다.
“총지출 7.1% 증가 불구, 내년 재정건전성 좋아질 것”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8월 25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2018년도 예산안’ 브리핑에서 “재정건전성을 조금 악화시키더라도 기꺼이 재정의 적극적 역할을 선택했을 것”이라며 2018년도 예산안은 확장적 재정 투입에 우선을 뒀다고 밝혔다. 김 부총리는 “내년은 새 정부 정책과제 이행 첫해이기 때문에 향후 추진에 차질이 없도록 필요 소요를 적극 반영했다”며 “최저임금 등 서민 일자리 복지 등 충분히 담아 사람 중심 지속성장을 뒷받침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김 부총리는 “계층 간 이동이 점점 단절되고 있고 경제와 사회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는 이 문제들을 해결하지 않고 갈 수 없다”며 “적지 않은 숫자의 재정을 지출하면서 사회·경제 구조의 전환 측면에서 생산적 복지·투자로서의 교육으로 이해해 달라”고 당부했다.
또한 재정건전성에도 신경을 많이 썼다는 점도 강조했다. 김 부총리는 “5년 동안의 재원 조달을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한다”며 “내년도 세수나 세입에 있어 현재 7.1% 총지출 증가율을 보이지만 건전성 면에서는 오히려 내년이 더 좋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내년도 예산안에 따르면 전체적으로 재정지출이 늘어났지만 세입 증가와 강도 높은 지출 구조조정 등을 통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 규모는 올해 -1.7%에서 내년 -1.6%로 0.1%p 개선된다.
법인·실적 개선 및 세법개정안 세수효과 등으로 내년도 총수입이 7.9%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한편 ‘2018년 국세 세입예산안’에 따르면, 내년도 국세 세입예산안 규모는 올해 추가경정예산(251조 1000억 원) 대비 17조 1000억 원(6.8%) 증가한 268조 2000억 원으로 전망됐다.내년 국세 수입 가운데 일반회계는 260억 9000만 원으로 올해보다 16조 9000억 원(6.9%) 더 잡혔다. 특별회계는 올해보다 2000억 원(2.8%) 증가한 7조 3000억 원에 달할 전망이다. 세목별로 보면 법인세 수입이 63조 1000억 원으로 올해보다 5조 8000억 원(10.2%) 늘어난다. 3대 세목(소득세·법인세·부가가치세) 중 세수 증가율이 가장 높다. 법인의 영업실적 개선 효과가 반영됐다. 내년 조세 부담률은 올해(추경안 기준)보다 0.3%p 높은 19.6%가 될 것으로 정부는 전망했다.
정부 예산안에 보이는 이색 사업들
시내버스에서 무선인터넷이용, 여성 전용 임대주택 공급…
기획재정부는 2018년도 예산안을 발표하면서 ‘생활밀착형 예산 70개’와 ‘이색 사업 50개’를 공개했다. 이색 사업 50개 가운데 눈길을 끄는 것을 살펴보면 우선 내년부터 2021년까지 단계적으로 전국 시내버스 2만 4000대에 공공 와이파이망을 구축한다. 전국 대부분 시내버스에서 무선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게 된다. 가계의 통신비 부담이 줄어들 것으로 기대된다. 주요 관광지 585곳에도 공공 와이파이망을 설치한다.
국가유공자에 대한 예우도 개선된다. 국가유공자가 사망할 경우 유족에게 대통령 명의의 근조기를 증정한다. 생계가 어려운 국가유공자는 장례비로 200만 원을 지원한다. 여권 유효기간 만료 6개월 전에 예고 문자를 보내는 서비스를 시작한다. 여권 유효기간을 잊고 있다가 해외여행을 떠날 때 낭패 보지 않도록 돕기 위해서다.
혼자 사는 저소득층 여성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여성 전용 임대주택도 공급한다. 역세권의 오피스텔·원룸을 사들여 시중 전세가의 30% 수준으로 임대할 계획이다. 수도권 50㎡ 기준으로 보증금 650만 원에 월세 15만 원 수준이 될 전망이다.
중소기업 근로자 7만 명에게 여행 자금을 최대 10만 원씩 지원하는 ‘한국형 체크 바캉스’가 도입된다. 기업과 근로자가 여행 자금을 적립하면 정부가 10만 원까지 보태주는 방식이다. 어린이 건강을 보호하고 미세먼지를 줄이기 위해 어린이 통학용 경유차를 LPG(액화석유가스) 차로 바꾸면 500만 원을 지원한다.
대형 추돌 사고를 줄이기 위해 대형 버스나 화물차에 전방 충돌 경고 기능을 갖춘 차로이탈경고장치 장착 비용을 1대당 40만 원까지 지원한다. 수도권 전철 경부선 구간에 급행열차를 추가로 투입해 서울~천안 간 운행시간을 최대 40분 단축한다. 쇠고기 등 축산물의 산지·도매·소매가격을 한눈에 비교해볼 수 있는 온라인 가격비교 사이트인 ‘고기넷’도 만든다.
정부는 2020년까지 전국 휴양림 통합예약시스템을 도입하기로 했다. 산림청이나 각 지자체가 예약 사이트를 별도로 운영하다 보니 여러 군데에 회원 가입을 해야 하는 불편이 있었다. 그동안 배울 곳을 찾기 어려웠던 스와힐리어(탄자니아·케냐 등), 다리어(아프가니스탄), 크메르어(캄보디아) 등 특수 외국어 교육 과정을 만들고 사전도 개발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