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강에 가고 싶다
김용택
그 강에 가고 싶다
사람이 없더라도 강물은 저 홀로 흐르고
사람이 없더라도 강물은 멀리 간다
인자는 나도
애가 타게 무엇을 기다리지 않을 때도 되었다.
봄이 되어 꽃이 핀다고
금방 기뻐 웃을 일도 아니고
가을이 되어 잎이 진다고
산에서 눈길을 쉬이 거둘 일이 아니다
강가에서 그저 물을 볼 일이요
가만가만 다가가서 물 깊이 산을 볼 일이다.
무엇이 바쁜가
이만큼 살아서 마주할 산이 거기 늘 앉아 있고
이만큼 걸어 항상 물이 거기 흐른다
인자는 강가에 가지 않아도
산은 내 머리맡에 와 앉아 쉬었다가 저 혼자 가고
강물도 저 혼자 돌아간다
그 강에 가고 싶다
물이 산을 두고 가지 않고
산 또한 물을 두고 가지 않는다
그 산에 그 강
그 강에 가고 싶다.
지리산 그 휘어진 능선과 골짝을 따라 내려가면 임실 지나 남원을 거쳐 구례로 돌아서가는, 삼남의 저 구성진 판소리 가락이 그대로 섬진강이 되는 그 고운 아낙과 만난다.
"누님, 오늘도 그렇게 달이 느지막히 떠오릅니다. 달 그늘진 어둔 산자락 끝이 누님의 치마폭같이 기다림의 세월인 양 펄럭이는 듯합니다. 강변의 하얀 갈대들이 누님의 손짓인양 그래그래 하며 무엇인가를 부르고 보내는 듯합니다."
김용택의 시「섬진강 4 - 누님의 초상-」의 일부분이다.
1948년 전북 임실 출생인 그는 김수영 문학상(86년), 김소월 문학상(97년)을 수상하면서 한국 서정 시단에 자리를 굳혔다.
3연 22행으로 된 시「그 강에 가고 싶다」는 지천명의 연륜이 녹아든 깊은 관조와 사색을 보여준다.
시인의 사물과의 응감이 상당한 철학적 경지를 거쳐 선(禪)적 높이에까지 이름을 보여주는 이 작품은 초기 시에 나타나는, 고향을 휘돌아가는 섬진강의 실존적 정서를 지나 한국인의 의식 내면에 똬리를 튼 사색의 원형을 찾아가는 깨달음을 담고 있다.
"인자는 나도 / 애가 타게 무엇을 기다리지 않을 때도 되었다" 참으로 서늘한 선문답인 이 시구는, 문득 직관을 통해 사물을 관통하는 선종의 큰스님의 자문자답처럼 들린다. "가만가만 다가가서 물 깊이 산을" 보고 끝내는 "물이 산을 두고 가지 않고 / 산 또한 물을 두고 가지 않는" 동양 철학의 정수인 혼연일체의 시 경지이다.
<해설가>김동원(사진)
약력
경북 영덕 출생.
1994년『문학세계』`시 부문’ 신인상 수상으로 등단
1997년 제 1시집『시가 걸리는 저녁 풍경』출간
2002년 제 2시집『구멍』출간
2004년 제 3시집『처녀와 바다』출간
2007년 동시집『우리 나라 연못 속 친구들』출간
2011년 시 에세이집『시, 낭송의 옷을 입다』출간
2014년 평론집『시에 미치다』출간
2015년 대구예술상 수상
현, 한국시인협회, 대구문인협회원. 대구시인협회 이사.
『텃밭시인학교』시창작교실 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