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심순덕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루 종일 밭에서 죽어라 힘들게 일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찬밥 한 덩이로 대충 부뚜막에 앉아 점심을 때워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한겨울 냇물에 맨손으로 빨래를 방망이질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배부르다 생각없다 식구들 다 먹이고 굶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발 뒤꿈치 다 헤져 이불이 소리를 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손톱이 깎을 수조차 없이 닳고 문드러져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가 화내고 자식들이 속썩여도 전혀 끄떡없는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외할머니 보고싶다
외할머니 보고싶다, 그것이 그냥 넋두리 인줄만 -
한밤 중 자다 깨어 방구석에서 한없이 소리 죽여 울던
엄마를 본 후론
아!
엄마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의 시행 사이사이에는 그 시대 가족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짊어져야 했던 한 어머니의 고달픈 삶이 캄캄한 부뚜막에 웅크리고 앉아 울고 있다. 시 속의 “엄마”처럼 그때의 어머니들은 한겨울에 얼음을 깨고 추위에 떨며 손등이 터진 손으로 빨래를 했을 것이다. 새벽 일찍 일어나 천근만근 곤죽이 된 몸을 끌고 아침 식전 한바탕 밭일을 해놓고 돌아오면, 또 자식들 챙겨 학교 보내고 집안 일 치우고, 또 그것 끝내고 이내 아침 밥상을 머리에 이고 지아비가 일하는 들녘으로 나가면 해는 벌써 산이마에 걸리었을 것이다. 밭두덩에 쪼그리고 앉아 조밥과 꽁보리밥을 겨우 한술 뜨고 숨 돌릴 틈도 없이 고랑마다 수북수북 올라온 김을 정신없이 매고 나면 허리를 펼 때마다 끊어지듯 하는 아픔에 절로 신음 소리가 났을 것이다.
당신의 손톱이야 문드러지든 말든 허리야 꼬부라지든 말든 오직 자식과 지아비, 시집어른 시중으로 한평생을 고달프게 살았을 어머니와 그 어머니의 윗세대는, 다름 아닌 이 땅의 어머니들의 자화상이리라.
심순덕의 시「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가 처음 세상에 알려진 것은『좋은 생각』100호 기념 100인 시집『그대의 사랑 안에서 쉬고 싶습니다』(2000년) 에 수록되면서부터이다. 그 후 2001년 5월 8일 어버이날, KBS-TV "TV 동화 행복한 세상“에 방영되어 그 시를 보고 들은 수많은 시청자들의 심금을 울렸다.
2003년『한국문인』을 통해 등단한 심순덕은 1960년 강원도 평창 횡계에서 9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시「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시인의 나이 서른 한 살 되던 해 늦가을, 당뇨를 앓다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뼈에 사무쳐 쓴 작품이라고 한다.
첫 시집『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2002, 대희출판사)의 표제시인 이 시는 심순덕 시인의 직접적 체험이 아니라, 시인의 어머니가 어린 시절 겪은 개인사적 체험을 형상화시킨 작품이다. 이 시는 6,70년대 이전의 가난했던 한국 농촌 사회의 한 단면을 화자인 ‘딸’의 시선과 개입을 통해, 혹독한 가난과 그 가족을 둘러싼 어머니가 겪은 뼈저린 고독감을 흑백필름처럼 보여준다.
<해설가>김동원(사진)
약력
경북 영덕 출생.
1994년『문학세계』`시 부문’ 신인상 수상으로 등단
1997년 제 1시집『시가 걸리는 저녁 풍경』출간
2002년 제 2시집『구멍』출간
2004년 제 3시집『처녀와 바다』출간
2007년 동시집『우리 나라 연못 속 친구들』출간
2011년 시 에세이집『시, 낭송의 옷을 입다』출간
2014년 평론집『시에 미치다』출간
2015년 대구예술상 수상
현, 한국시인협회, 대구문인협회원. 대구시인협회 이사.
『텃밭시인학교』시창작교실 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