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열무꽃처럼
신현림
청청한 강물에 나를 비추어도
얼굴이 보이지 않아 강 속으로 들어갔다.
검게 이끼 낀 내 얼굴 찾아 헤매다
강바닥에 쓰러진 어머니를 보았다
수십 년
노을 같은 밥을 짓느라 눈앞이 캄캄해진 어머니
백내장 수술로도 세상이 보이지 않아
강바닥을 방바닥으로 알고 오신 어머니
쓰라린 어머니가 나를 안아주셨다.
딸아, 네 얼굴이 쓸쓸해서 빵처럼 뎁혀놓았단다.
딸아, 네 얼굴이 이제 햇빛 날리는 은쟁반이구나
- 뜨거운 어머니 가슴이 제 얼굴이에요.
기차소리 젖는 강물 위로 어머니 그림자 내 그림자
햐얀 열무꽃처럼 떠올라 둥둥 떠올라
꽃가루 흐르는 오월의 강물 위로.
시「하얀 열무꽃처럼」만큼 시행과 시행 사이 모녀의 뜨거운 눈물이 많이 흐르는 시도 드물다.
1961년 경기도 의왕 출생인 신현림의 시는 우선 시각적이다. 체험을 토대로 하기에 아프다. 4연 15행으로 완성된 너무나 처연하고 외로운 신현림의 시「하얀 열무꽃처럼」은 읽을수록 눈물이 흘러내린다. 애써 보려 하지 않아도 보이고 듣지 않아도 저절로 들리는 천륜의 내밀한 고백이 시에 탁월하게 형상화된다.
모녀만이 일평생 간직하고픈 설움과 통곡의 소리가 "노을 같은 밥을 짓느라 눈앞이 캄캄해진 어머니"를 통해 읽는 독자의 가슴에 되울림으로 울린다.
그 어떤 자식이 제 어미의 질곡의 삶을 찾아 강바닥까지 내려가 보았던가. "강바닥을 방바닥으로 알고 오신 어머니 / 쓰라린 어머니가 나를 안아주셨다. /…/ 뜨거운 어머니 가슴이 제 얼굴이에요" 불혹이 넘은 시인의 어머니에 대한 극진한 사랑을 확인한 근래 보기 드문 효의 시구다. 아름답고 슬픈 모녀의 정이 담긴 이 시에서 우리는 "기차 소리 젖는 강물 위로 어머니 그림자 내 그림자"가 하얀 열무 꽃처럼 곱게 피어 환치되는 시적 부활을 느낀다. 시 속의 어룽진 어머니의 눈물 속에서 시인의 삶의 궤적이 꽃빛처럼 반추된다. 이 시는 낭송으로 무대에 올리면 좋다. 시낭송무대는 하얀 열무꽃이 핀 언덕 위 오월의 텃밭이다. 모녀가 허리를 펴고 구릉 아래로 돌아흐르는 강물을 본다. 자신의 얼룩진 삶과 딸의 기구한 인생을 다 씻어가는 바람이 있으면 좋다. 필름은 정지되고 되돌아보면 어머니 같은 연세의 여성 시낭송가와 시속의 딸처럼 외로운 여성 시낭송가가 하얀 열무꽃밭을 배경으로 서 있다.
먼저 딸이 서러운 곡조로 "강바닥에 쓰러진 어머니"를 찾아 나서면 다음은 저 굽이굽이 돌아가는 강물처럼 "쓰라린 어머니"가 딸을 꼭 안아준다. "뜨거운 어머니 가슴이 제 얼굴이에요" 딸의 통곡에 이어 "기차 소리 젖는 강물 위로 어머니 그림자 내 그림자"가 겹쳐지면서 낭송은 완성된다. 관객은 높은 하늘과 강물, 모녀와 열무꽃 무더기, 언덕 위로 흘러가는 흰구름 두어 덩이 그리고 흔들리는 바람뿐. 배경음으로 대지 위로 Gheorghe Zamfir의 애조 띤 그리움과 파스텔 음조의 팬플룻 연주곡 「여름비」가 오월 하얀 열무꽃이 핀 꽃이랑 따라 흐르면 온갖 벌 나비가 그 선율 따라 나폴 나폴 날아간다.
<해설가>김동원(사진)
약력
경북 영덕 출생.
1994년『문학세계』`시 부문’ 신인상 수상으로 등단
1997년 제 1시집『시가 걸리는 저녁 풍경』출간
2002년 제 2시집『구멍』출간
2004년 제 3시집『처녀와 바다』출간
2007년 동시집『우리 나라 연못 속 친구들』출간
2011년 시 에세이집『시, 낭송의 옷을 입다』출간
2014년 평론집『시에 미치다』출간
2015년 대구예술상 수상
현, 한국시인협회, 대구문인협회원. 대구시인협회 이사.
『텃밭시인학교』시창작교실 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