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망울
김동원
며칠 전부터 매화꽃 나무는, 자신의 작은 젖꼭지 찌릿찌릿 감전된 듯 아려온다는 것이다. 왼쪽 꽃망울보단 오른쪽 그 꽃망울이 훨씬 더 아린다나,
‘한번 만져 볼래?’ 그런 눈치길래, 참 철딱서니도 없이, 대낮 소년 기분 반 남자 기분 반 되어, 쏘옥, 손 집어넣었지.
얼마나 깊고 웅숭스런 바다 속인지, 어찌나 신비롭고 야릇하던지, 마치, 그 옛날 초희의 젖가슴처럼, 넣어도 넣어도 끝이 닿지 않던, 그 첫 떨림처럼.
「꽃망울」을 쓸 무렵, 이상하게도 딸애의 변덕이 죽 끓듯 했다. 어린 딸은, 자주 젖가슴 근처가 찌릿찌릿 아프면서 딱딱한 멍울이 만져진다고 야단이었다. 공연히 가슴이 두근거리고 발긋발긋 귓불이 뜨겁다고도 했으니까. 물론 아랫배 통증도 우릿하게 아려온다고도 했다. 처음 나는 딸애가 무엇을 잘못 먹은 체증인가 여겨서, 사알살 아이의 배를 어루만져주었다. 그 모습을 눈여겨보던 아내가 슬쩍 건너 방으로 나의 소매를 잡아끄는 게 아닌가. 그리곤 귀엣말로 여자가 되어가는 그 야릇한 ‘첫 비밀’에 대해 귀띔해주었다. 13살 난 딸은 그렇게 한밤중 초경(初經)의 신호를 받았다. 꽃잎이 찡그리듯 예쁜 얼굴이 이지러졌다. 생리가 터지기 직전의 소녀의 통증은 무척 고통스러워보였다. 난생 처음 나는 소녀가 처녀가 되어가는 신비로운 사실을, 그날 밤 서너 시간 동안 딸애를 통해 알게 된 셈이다. 어머니의 양수 속에서 자라 남자가 된 나인데, 어처구니없게도 여성의 몸에 대해서는 너무나 무지하다는 사실에 새삼 놀랐다.
아내는 사춘기 딸애를 앞에 두고 실감나게 여성의 생리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아빠가 듣는 여자들의 은밀한 몸의 비밀들이 못내 부끄러운지 딸애는 자꾸만 방 밖으로 나를 떠밀어내었다. 시인은 궁금하면 미친다. 문 밖에서 그들 모녀 하는 말을 귀대고 엿들었다. 그러다 문득 거실에서 키우고 있는 게발선인장에 내 눈길이 닿았다. 한창 빨간 꽃망울이 벼라별 모양으로 색깔을 내밀고 있었다. 처음에는 꽃망울이 너무 작아 거의 보이지 않더니 그날따라 딸애 젖멍울만한 것이 여러 개 부풀어 올라있었다. ‘꽃망울과 젖멍울’ 두 말은 어쩐지 상당히 닮은 데가 있다.
말은 이유 없이 생기지 않고 이치가 비슷한 데 이르면 서로가 닮는 가 보다. 다음 날 모녀는 백화점에 들렀다고 한다. 어린 딸애의 작은 젖가슴을 브래지어 캡 속에 예쁘게 모아 주기 위해서란다. 부풀어 오른 여자 몸의 변화가 마냥 신기하고 호기심으로 가득한 딸. 온종일 저 혼자 신이 났다. 브래지어 훅을 ‘끌렀다 이었다, 이었다 끌렀다’ 그 도화경 같은 놀이에 푹 빠졌다. 곁에 서서 딸애의 앙증스러운 정경을 보고 있자니, 나의 생각은 생뚱맞게 엉뚱한 곳으로 뻗쳤다. ‘저 우리 집 앞마당에 핀 매화꽃도 브래지어를 하는 걸까. 수벌 놈이랑 수팔랑나비 놈들은 저 꽃의 브래지어 훅을 대체 어떤 방법으로 풀까.’
참 그 봄날, 오랜만에 시적 비유로 인해 나 혼자 파안대소했다.
김동원(사진)
약력
경북 영덕 출생.
1994년『문학세계』`시 부문’ 신인상 수상으로 등단
1997년 제 1시집『시가 걸리는 저녁 풍경』출간
2002년 제 2시집『구멍』출간
2004년 제 3시집『처녀와 바다』출간
2007년 동시집『우리 나라 연못 속 친구들』출간
2011년 시 에세이집『시, 낭송의 옷을 입다』출간
2014년 평론집『시에 미치다』출간
2015년 대구예술상 수상
현, 한국시인협회, 대구문인협회원. 대구시인협회 이사.
『텃밭시인학교』시창작교실 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