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로소 고흐는 이 그림 속에서 영원의 미를 얻는다 저 무한한 우주 별빛 속에서 사라진 혼령과 움직이는 강물의 리듬이 밤 불빛에 흘러넘친 너무나 벅찬 시정(詩情)이, 그림「론 강의 별 달밤」속엔 있다 몸이 물에 빨려드는 환시와 그림 속 들려 오는 환청의 착각 속에서 9월 강둑을 걷고 있노라면, 차원 높은 예술미의 향긋한 향기가 소곤거리는 연인들의 코밑으로 스며 들어간다
물속에서도 젖지 않는 달빛의 관입(觀入) ― 보들레르와 릴케와 이백을 온통 뒤흔든, 저 물아일체의 위대한 영감의 극치 인간 영혼이 이렇게도 아름답게 제 육신 불태워 인류 정신사의 한 궤적이 된다는 것, ― 그저 놀라울 뿐 ! 이 그림 밖에서 고흐는, 붓 하나로 또 하나 부활을 얻어 점점 더 시공을 타고 넘어 인류 황홀경이 되고 있었다
나는 죽음을 뚫고 나오면서, 극도의 정신분열 속에서도 우주 속 진정한 주인인 ‘나’를 찾은 고흐를 발견했다.
마치 릴케의 산문 속에 조각가 미켈란젤로가〈돌 속에 갇혀 신음하며 자신을 해방시켜 달라는 신의 음성을 듣고 끌과 망치로 돌을 쪼아서 신의 형상을 드러내 줌으로 해서 신을 해방 시켰듯〉나 역시 고흐의 예술 작품에 관입돼 자살로 마감한 그의 비통한 이승세계를 시로써 해방시켜, 지옥의 쇠사슬을 끊고 진정한 신의 자유로 돌려주고 싶었다.
나는「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캔버스에 유화. 72×92cm. 1888년 9월 작. 오르세 미술관 소장)이야말로, 고흐가 끝없이 추구한 검은 색의 비밀이 가장 시적(詩的)으로 잘 투영된 그림이라고 생각한다.
프랑스 남부 지방의 아름다운 밤 풍경과 무수히 반짝이는 별빛을 고흐가 좋아했듯, 나 역시 수성못 야경을 통해 별빛이건 달빛이건 물에 접하는 순간 황홀경ecstacy이 되고 만다는 사실을 직관 했다. 고흐는 촛불을 모자 위에 세워두고 이 그림을 그렸다. 고갱과의 불화로 면도칼로 자신의 귀를 자르기 불과 5개월 전이었다.
밤하늘별이 너무도 곱고 찬란한 것이 오히려 이 그림을 고결한 비극의 전조로 느끼게 한다. 아니, 무한한 우주 별빛 속에서 사라진 혼령과 강물의 리듬이 혼융된, 참으로 아름다운 한 편의 서정시 이다. 실제 이 화폭의 붓질은 코발트블루로 채색되어, 밤하늘은 강렬하면서도 군데군데 별빛이 꽃 핀듯하여, 병든 내 눈에는 마치 흰 국화 꽃밭처럼 보였다. 고흐도 별무리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별의 가운데 부분에 흰색 물감을 튜브에서 짜내 바름으로써 흰 꽃빛 느낌을 주었다.
인상파 화가들은 검정을 색이 아니라 모든 색의 부재, 즉, 색의 여왕(르누아르)으로 보았다. 무채색인 검정을 통해 밤하늘별과 무한 공간인 우주의 심연을 드려다 보고자 했는지 모른다. 또한 이 그림 속에 점점이 찍힌 강둑의 노랑색 도시 불빛은, 론강의 9월 정경과 밤 물빛에 불기둥으로 흔들려 도시 아를을, 비현실적이고 환상적인 천상의 도시 분위기로 채색했다.
나는 밤마다 하폭 하단에 배치된 수직의 돛폭을 단 두 척의 배를 타고, 고흐가 꿈꾸었던 북두칠성까지 상상의 노를 저어 화폭을 건너다녔다. 때로는 강둑을 걷는 두 연인의 비밀스러운 속삭임을 궁금해 하며, 밤하늘과 땅 사이 은유된 못물이 우는 소리를 통해, 나의 아픈 몸과 영혼을 치유하고자 했다.
이 작품은 19세기 후반 새로운 유럽 미술의 문을 연《앙데 팡당전》(1884년)에 출품되었으며, 자유로운 시각과 양식을 취한 전위적ㆍ실험적인 미술 발전에 크게 기여한 인상파 화가들을 세상에 알린 신호탄이 되었다.
김동원(사진)
약력
경북 영덕 출생.
1994년『문학세계』`시 부문’ 신인상 수상으로 등단
1997년 제 1시집『시가 걸리는 저녁 풍경』출간
2002년 제 2시집『구멍』출간
2004년 제 3시집『처녀와 바다』출간
2007년 동시집『우리 나라 연못 속 친구들』출간
2011년 시 에세이집『시, 낭송의 옷을 입다』출간
2014년 평론집『시에 미치다』출간
2015년 대구예술상 수상
현, 한국시인협회, 대구문인협회원. 대구시인협회 이사.
『텃밭시인학교』시창작교실 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