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천
김동원
어릴 적 난 홀어머니와 함께, 강가 백로 외발로 선 오십천 천변에 핀 복사꽃 꽃구경을 갔다 봄버들 아래 은어 떼 흰 배를 뒤집고, 물결이 흔들려 뒤척이면 붉은 꽃개울이 생기던, 그 화사한 복사꽃을 처음 보았다 젊은 내 어머니처럼 향기도 곱던 그 복사꽃이 어찌나 좋던지, 그만 깜박 홀려 버렸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갓 서른이 넘은 어머닌 울고 계셨다 내 작은 손을 꼭 쥔 채, 부르르 부르르 떨고 계셨다 그 한낮의 막막한 꽃빛의 어지러움, 난 그 후로 꽃을 만지면 손에 확 불길이 붙는 착각이 왔다
어느새 몸은 바뀌고, 그 옛날 쪽빛 하늘 위엔 흰 구름덩이만 서서, 과수원 언덕을 내려다본다 새로 벙근 꽃가지 사이로 한껏 신나 뛰어다니는 저 애들과 아내를, 마치 꿈꾸듯 내려다본다
나는 스물여덟에 공사 현장에서 리프트에 낀 사고를 당했다. 그 죽음과 같은 사건은 결혼 후 엄청난 공포와 후유증으로 내 삶을 덮쳤다. 길을 가다 급작스레 명치 근처의 장기 경련과 발작을 일으키며 그대로 바닥에 엎어져버렸다. 숨통이 끊길 것 같은 통증이었다. 이런 증상이 오면 그 후 나는 그 자리에 바로 주저앉아 30분쯤 온몸 사지를 뒤틀며 경련을 풀어야했다. 눈물이 쏟아지고 하필 왜 내가 이 몹쓸 고통을 받아야 하는지 수 만 번도 더 하늘에 되묻곤 했다.
그 후 나는 두 번의 수술을 겪으며 극심한 우울증과 정신 장애를 겪었다.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병원 치료를 중단하고 숲속 산책, 명상, 기(氣) 훈련과 함께 시작(詩作)의 몰입, 명시 탐독을 통해 시 치료의 가능성을 확인한다. 내게 있어 시 읽기와 시 쓰기는 세상살이의 고달픔과 병으로 인해 외부와의 단절감을 극복하는 표현의 한 통로였다.
시 창작이야말로 ‘나 혼자가 아니라는 것’, 개인의 가장 ‘은밀하고 내밀한 부끄러운 고백’을 거침없이 쏟아낼 수 있는 카타르시스의 공간임을, 미친 듯 시작(詩作)을 하면서 알았다.
실제로 시 창작에 몰입하면 어느 한 순간 갑자기 ‘환하게 마음이 열리는’ 경험을 하게 된다. 두 번의 ‘쓸개와 코 수술’에서도 전혀 몸 상태가 호전되지 않은 나는「오십천」을 쓸 무렵 거의 신경정신쇠약으로 날마다 혼몽한 상태였다. 오로지 숨을 끊고 싶다는 자살 충동뿐이었다. 극심한 우울과 공황장애는 죽음에 대한 애상에 휩싸이게 했으며, 이유 없이 가슴이 방망이질 하거나 온몸이 식은땀에 젖어 부들부들 사시나무 떨듯 떨기만 했다.
밤마다 돌아가신 어머니를 그토록 애타게 부른 적도 없었다. 사람이 극도로 정신이 불안하니 저절로 ‘어머니’ 소리가 새어나왔다. 그 때 나는 절망적인 심정이 되어 죽기 전 아내와 자식 둘을 데리고 그 옛날 초등학생 때 홀어머니와 함께 보았던 복사꽃밭을 한 번 가 보았으면 하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우리 네 식구는 저 아름다운 동해 바다 길을 따라 갈매기 울음소리 구슬픈 영덕 오십천 천변에 핀 복사꽃밭을 가게 되었다. 어린 아들의 손을 꼭 잡고 바라본 그 복사꽃빛은 눈물이 어룽져 흘러내려 차마 이루 형언할 수 없었다. 아내와 아이들이 복사꽃밭 사이사이로 신이 나서 뛰어노는 걸 보며 이곳이 이승인지 저승인지 경계 지을 수 없는 먹먹한 마음뿐이었다. 아래에 소개한「오십천」은 그때 대구로 돌아와 곧바로 착상된 시이다.
김동원(사진)
약력
경북 영덕 출생.
1994년『문학세계』`시 부문’ 신인상 수상으로 등단
1997년 제 1시집『시가 걸리는 저녁 풍경』출간
2002년 제 2시집『구멍』출간
2004년 제 3시집『처녀와 바다』출간
2007년 동시집『우리 나라 연못 속 친구들』출간
2011년 시 에세이집『시, 낭송의 옷을 입다』출간
2014년 평론집『시에 미치다』출간
2015년 대구예술상 수상
현, 한국시인협회, 대구문인협회원. 대구시인협회 이사.
『텃밭시인학교』시창작교실 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