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우리나라에는 ‘6법 위에 떼법 있다’란 말이 횡행해 왔다. 이 말은 이미 알고 있듯이 법이 있어도 이해당사자나 정치적 목적의 집단적 물리적 의사표시가 국가기관의 법집행을 무력화시키고 결국 정부가 집단의 물리력에 굴복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심지어 집단적 의사표시가 물리적으로 위험성을 띨 만큼 위법할 경우라도 이를 저지하는 경찰이 오히려 과잉진압이란 이유로 법의 제재를 받거나 되레 사과하는 지경에까지 이른 것이다. 물론 공권력의 집행도 적법해야 하고 그러지 못하면 법의 심판이나 제재를 받는 것이 당연함은 말할 필요도 없다.
다만 그같은 적법성이 정권이 바뀔 때마다 달라진다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이같은 공공연한 법치무력화 풍조는 최근 정치권에 가해지고 있는 폭력과 테러, 우리체제에 이상증후로 느껴지는 일부 시위현장, 검찰의 지휘권문란 등에서 이제 한계상황에 온 것같은 느낌이 든다.
김성태 한국당원내대표에 대한 폭행사건은 김대표 자신이 범인에 대해 온정적 용서를 원했지만 사안 자체는 매우 엄중한 사례라 할 수 있다.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드루킹뎃글사건의 특검 보다 판문점선언의 비준을 우선으로 다뤄야한다는 정치적 소신을 관철시키기 위해 국회에 무단 침입해서 이같은 폭행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제주에서 원희룡도지사후보가 제주제2공항문제와 관련한 세미나에서 반대주민으로부터 폭행을 당한 것 역시 지방정치에서 자신의 소신과 맞지않다고 폭력을 저지른 것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합법적 의사 표시가 아닌 이같은 폭력적 방법으로 자신의 정치적 소신을 관철하려는 과격세력이 생겨나고 있다는 것은 법치무력화의 풍토에서 피어나는 독버섯이란 생각이 든다.
서민들이 겪는 갑질의 억압에 대리로 스트레스를 풀어주고 있는 대한항공사태는 이미 국민들의 관심을 빨아들이기에 충분한 콘텐츠를 보여주고 있지만 회사 경영진교체를 요구하는 가면시위는 더욱 흥미롭다.
우선 시위의 그림이 가면극을 연상시키기도 하지만 그 회사의 직원이 아닌 일반시민들까지 합세해 회사 경영진을 물러가라고 소리치는 것은 선 듯 이해하기 어렵다.
경영진의 갑질에 공분하는 측면은 짐작할 수 있지만 주식회사의 경영진을 주주가 아닌 사원이나 일반시민이 시위와 물리력으로 물러나게 하겠다는 것은 법적 문제는 물론 우리체제와 맞는 행동이라 할 수 있을까?
아무리 대한항공의 경영진이 상식을 뛰어넘는 과도한 짓을 했다고 해도 정당한 법절차에 따라 단죄하고 책임을 물어야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같이 혼란한 사회질서를 법에 따라 공정하게 바로잡아야 할 검찰은 어떤가? 강원랜드채용비리사건 수사에서 검찰총장 수사지휘권을 둘러산 수사담당 검사의 노골적인 반발은 가뜩이나 신뢰가 추락한 검찰권에 대해 또 한번 실망을 금치못하게 한다.
검사동일체원칙을 채택하고 있는 우리나라 검찰에서 검찰총장의 지휘권이 흔들리게 되면 과연 법집행의 공정성과 안정성이 보장될 수 있을까?
물론 정치사안에서 이 원칙을 다소 융통성있게 적용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사안의 결정과정에선 내부적으로 이루어지는 합리적 조정을 넘어 하급부서의 검사가 동일체의 정점에 있는 총장을 외부에다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것은 검찰체계의 혼란으로 보일 수 있는 것이다.
검찰조차 이럴진데 문재인 정부출범이후 정치 사회적으로 벌어지는 폭력과 법체계를 무시한 물리적 의사표시 등을 어떻게 바로잡고 사회를 평화롭게 안정시킬 수 있을지 우려스럽다.
그렇찮아도 검찰과 경찰의 수사권조정과 검찰개혁이 우리사회 긴급현안의 하나인데 검찰의 이런 혼란 속에 개혁작업이 이루어진다면 사회질서는 어떻게 될 것인가?
적폐청산의 기치를 걸고 사회를 개혁한다는 정권하에서 백주에 정치폭력이 난무하고 법의 범주를 넘어서는 집단주장이 기승을 부린다면 이 나라는 어디로 갈 것인가. 폭력과 무질서는 법치주의를 무력화시키고 민주주의를 병들게 할 것이다. 우리사회의 건강성을 되돌아볼 때다.(동일문화장학재단 협찬)
홍종흠(洪宗欽) 프로필
매일신문 논설주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대구광역시문화예술회관장
대구가톨릭대학겸임교수
2.28민주운동기념사업회 3대의장
대구광역시 문화상 수상
저서및 편역서: 대구의 앞산, 대구의 뿌리 수성, 팔공산,그 짙은 역사와 경승의 향기, 국역계동선생문집,대구의 고문선,수성사직제의례, 선(禪)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