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는 왠지, 종일 모로 누워 우는 듯했다. 손 베개를 괸 채 시달린 병에 지친 여인처럼, 비는, 눈가에 눈물이 번져 오고 있었다.
그 봄날 앞마당 꽃잎에 떨구던 빗물을 세며,
"다음 생은 꼬옥, 꽃이 돼야지."
자꾸 쓸쓸한 예감 쪽으로 말이 젖던,
그 비는, 곱고 야윈 겨울 아침 몸을 벗고, 흰 눈 속 꽃을 피우려 하늘로 들었다.
그 집은 대문을 열면 일자형 셋방이 보이고, 텃밭을 낀 마당을 돌아가면 주인 내외가 사는 안채가 좋았다. 중풍의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4년을 그곳에서 시 공부를 하며 봉양했다. 네 살 때 아버지 가시고 서른에 혼자되신 청상의 어머닌, 나만 보면 늘 화사한 꽃빛이었다.
나는 그 집에서 생애 가장 아름답고 외로운 문청시절을 보냈다. 그때까지 객지생활로 떠돈 나는 어머니와 마음 속 깊은 정담을 나눈 적이 없었다. 전신불수가 되어서야 비로소 나는 당신 삶의 모진 뒤쪽을 엿듣게 되었다. 어린 나이에 죽은 형의 이야기를 어미의 오열 속에서 들었다.
어쩌다 내가 시내에 나간 날은, 당신은 하루 종일 방에 누워 천장의 무늬를 세었다. 어눌하게나마 말씀은 할 수 있어 내가 시를 지어 읽어드리면, 당신은 그녀의 서러운 삶과 버무려 아침 내내 시 이야기를 하셨다. 욕창이 생겨 살갗이 물러져 괴로워하시던 생전 모습을 떠올리면, 두 뺨에 불효의 눈물이 흐른다.
그 집 앞마당에는 유난히 붉은 몇 그루의 모란꽃이 고왔다. 따스한 봄날 아예 방문을 활짝 열어 제치고, 어머니는 꽃대 위에 핀 모란 꽃봉오리를 셈하는 낙으로 하루를 흘리셨다. 내가 모란 꽃잎을 여러 장 따 드리면, 뻐덕뻐덕 굳은 손바닥에 얹어놓고 몇 시간이고 향기를 맡곤 하시던 어머니.
어쩌다 빗물이 꽃잎에 떨어져 젖고 있는 모습을 볼 양이면, 당신은 혼자 입속말로 “내가 죽으면 이다음 모란이 되어야지” 중얼거리셨다. 나는 그 말이 당신의 슬픈 종언(終焉) 같아, 한밤중 술에 취한 채 건넌 마을 단산리까지 비를 맞고 걷다오곤 했다.
가시기 며칠 전이었나 보다. 당신은 나를 물끄러미 보시더니, “시가 그렇게도 좋으냐” 물으셨다. 나는 웃으며 “어머니만큼 좋아요” 철없는 대답을 했다. 그해 추운 겨울 눈 온 날 새벽에 섬뜩해 깨 보니, 팔베개를 괸 채, 어머니는 밤새 내린 흰 눈 소리 들으며 우주 속으로 떠나가 버리셨다. 그토록 사랑하던 아들을 혼자 이승에 남겨 둔 채, 삐그덕 대문을 여시곤 모란꽃을 피우려고 저승으로 바삐 가시었다.
시,「꽃과 여인」은 이승에서 인연을 같이한 어미를 위한 자식의 사모곡이다.
김동원(사진)
약력
경북 영덕 출생.
1994년『문학세계』`시 부문’ 신인상 수상으로 등단
1997년 제 1시집『시가 걸리는 저녁 풍경』출간
2002년 제 2시집『구멍』출간
2004년 제 3시집『처녀와 바다』출간
2007년 동시집『우리 나라 연못 속 친구들』출간
2011년 시 에세이집『시, 낭송의 옷을 입다』출간
2014년 평론집『시에 미치다』출간
2015년 대구예술상 수상
현, 한국시인협회, 대구문인협회원. 대구시인협회 이사.
『텃밭시인학교』시창작교실 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