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원
여자 엉덩이만한 둥근 보름달이 떴다
내 오늘 법이산 위에서 그 엉덩이 밟고 올라
쑤-욱 구름장 위로 고개를 내밀면,
껄껄껄 시선 이백이
하늘 위서 손을 뻗는다
이렇게 우리는 초저녁 북극성에 걸터앉아
술상이 나오기 전
한 수 시를 짓고,
지구로 떨어지는 별똥을 바라보며
눈앞에 귀찮게 아른거리는 우주선 파리채로 후리고,
참 고운 몸매의 샛별이
웃는 듯 床(상)을 받쳐들고 나오면, 안주론
별자리 황소를 굽고
술은 북두칠성 국자로 알콜 성단에서 뜨고,
어린것들은 조랑말자리별에 태워
성도를 한 바퀴 천천히
돌게 한다
그렇게 한밤중 거나하게 취하면
우리 둘은 어깨를 끼고
은하수 강가에 배를 띄우는데,
이백은 뱃머리서 월하독작을 읊고
난 취흥에 겨워 저 이쁜 달 엉덩이를 힘껏
'철썩' 때린다
그러면 "으응" 하고 잠 덜 깬
웬 여자 볼멘소리가
방 한구석에 자늑자늑하다
항상 나는 이백을 거대한 시의 제국을 건설한 대시인으로 흠모했다. 이백의「月下獨酌(월하독작)」이야말로 ‘풍, 골, 문채’ 3박자를 모두 갖춘 절묘한 시가 아닌가. ‘달 아래 홀로 술 들며’라는 제목부터 얼마나 낭만적인가. “꽃 속에 술 단지 마주 놓고” 불콰하니 대취하여 환한 보름달 아래 용천검을 휘두르며 검무를 추는 젊은 이백이 눈에 선하다. 비록 천하를 얻진 못했지만〈내가 노래하면 달님은 서성대고 / 내가 춤을 추면 그림자 흔들대네〉에서 드러나듯, 술과 꽃, 보름달과 그림자가 시 속에 혼연일체 된 모습이야말로, 대붕이 하늘에 오르는 웅혼한 경지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기운생동의 ‘풍(風)’이 있는가 하면, 죽어서도〈아득한 은하에서 다시 만나길〉소원하는 정신의 ‘골(骨)’이 있고, 사물에 접신된 문채(文采) 또한 기가 막힌다. 시,「보름달」은 이백의「月下獨酌(월하독작)」에 대한 화답시이다. 지난 시절 나는 투병의 외로움을 달래며 5년간 수성못을 산책하였다.
흰 눈이 퍼붓는 법이산에 올라 바라본 겨울 새벽의 수성못은, 그야말로 설경 수묵화였다. 봄밤 벚꽃은 피고 환한 보름달과 네온사인 불빛이 바람에 흔들려 온갖 형상으로 물속에 일렁거릴 때면, 입에서 나도 모르게 시들이 절로 흘러나왔다. 극도로 아픈 몸은 상대적으로 눈에 보이는 만상을 꿈속처럼 만들었다. 둑 아래 물과 빛과 꽃이 한데 뒤엉켜 소곤거리는 듯한 환각을 느끼며, 만약 내가 죽어 저 광활한 우주로 돌아간다면 아름다운 은하수가 되리라 나름 상상했다. 그때 홀연히, 둥 둥 둥 시의 영감(靈感)이 내 몸으로 들어왔다. 마치 우주와 나와 이백이 실제 은하수의 바다에 노니는 물아일체경의 세계가 손에 만져지는 듯 했다. 그날 밤 나는 오로지 상상력 한 놈만 데리고, 은하수 강가에 배를 띄우고 시선 이백의 술잔을 공손히 받으며, 참 예쁜 달 엉덩이를 어루만지며 뱃머리에 앉아 호호탕탕 대취했다
.
김동원(사진)
약력
경북 영덕 출생.
1994년『문학세계』`시 부문’ 신인상 수상으로 등단
1997년 제 1시집『시가 걸리는 저녁 풍경』출간
2002년 제 2시집『구멍』출간
2004년 제 3시집『처녀와 바다』출간
2007년 동시집『우리 나라 연못 속 친구들』출간
2011년 시 에세이집『시, 낭송의 옷을 입다』출간
2014년 평론집『시에 미치다』출간
2015년 대구예술상 수상
현, 한국시인협회, 대구문인협회원. 대구시인협회 이사.
『텃밭시인학교』시창작교실 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