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북 선천 출신인 계철순(1912∼2003) 전 경북대 총장은 대구‧경북을 좋아했던 사람인 것 같다. 대구에서 판사 생활을 했던 그는 5‧16 군사혁명 직후인 1961년 12월 경북대 제4대 총장으로 발탁됐다.
그는 혁명정부가 공포한 교육 임시특례법에 따라 개교 이래 중심 역할을 해 온 교수회의 동의 없이 임명된 첫 총장이었다. 총장을 마친 뒤엔 가족이 있는 서울로 가지 않고 안동으로 옮겨 20년 가까이 변호사로 소일하며 사진에 푹 빠졌다.
그는 총장으로 취임하며 “대학교육을 질적으로 향상시켜 경북대를 전국 굴지의 국립대학으로 발전시키겠다”는 포부를 밝힌다.
경북대의 혁신이 시작된다. 그는 미국과 유럽 대학에 일반화된 강의계획표 제도를 국내에 처음 도입했다. 주먹구구 강의나 잦은 휴강을 막는 방법이다. 경북대는 1966년 교수 98%가 강의계획표를 만들었다.
벙어리 영어 교육을 바꾸기 위해 어학연습실을 처음 만든 것도 경북대였다. 입학시험은 방식을 고쳤다. 문제를 기존 OX 중심에서 주관식으로 전환하고 편지 쓸 줄 모르는 ‘죽은’ 공부를 바꾼다며 작문을 도입했다. 입시 논술의 시작이다.
문교부는 1967년 전국 대학이 경북대의 교육 쇄신을 따라 배우도록 했다. 연구비도 확충했다. 계총장이 학과를 돌며 수렴한 교수들의 첫 번째 요구였다. 그는 경북대의 전신인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한 박정희 최고 권력자를 만나 두 차례나 연구비를 받아낸다.
기업 연구비를 끌어들이기 위해 대학 연구소의 효시인 생산기술연구소도 만들었다. 대학 교육‧연구의 틀을 확 바꾼 것이다. 캠퍼스도 정비했다. 본관 앞에서 박물관으로 올라가는 잡초 무성한 언덕을 월파원(月坡園)이라는 부채꼴 문화재 동산으로 변모시켰다.
메마른 캠퍼스에 기부 방식으로 일청담이라는 대형 분수 연못을 만들고 국내 1호 꽃시계도 설치했다. 교내에 길도 닦았다. 공병대의 도움을 받아 길을 만들고 가로수를 심었다. 대표작이 벚꽃길이다.
길 포장도 나섰다. 캠퍼스를 통과하는 버스길은 비만 오면 진흙탕이 됐다. 총장은 강원태 대구시장을 만나 시영버스가 다니는 길의 포장을 협의한다. 비 오는 날 현장을 확인한 시장은 필요성을 인정했다. 정문에서 운동장까지 폭 5m 캠퍼스 제1호 포장도로가 등장했다. ‘길 총장’이란 별명이 붙었다.
그는 총장 임기 6년 동안 경북대의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반석에 올려놓았다. 50년 전 이야기다. 태동기를 지난 대학 환경은 그 사이 판이하게 달라졌다. 학령인구가 급감해 경쟁력을 잃은 대학은 머잖아 문을 닫아야 할 형편이다.
또 지방자치가 실시된 지 20년이 훨씬 지났다. 그 사이 경북대를 비롯한 지역 대학은 경쟁력이 뒷걸음질 쳤다. 대구와 경북이란 도시와 지역 브랜드도 지방자치 이후 위상이 분명 후퇴했다. 지방자치 이후 지역대학도 도시도 수도권에 갈수록 밀려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계철순 총장의 캠퍼스 도로 포장 리더십을 되살릴 만하다. 대구시장과 대학 총장이 펼친 일종의 관학(官學) 협치(協治)다. 경북대로 지하철 노선 연장 등 지금도 협치를 통해 지역과 대학의 경쟁력을 끌어올릴 소재는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지하철 2호선이 두 개의 사립대학을 연결하면서 대구에서 가장 규모가 큰 대학으로 지하철을 연결하지 않은 것은 시민 편의 측면이나 지하철공사의 수익 측면에서 큰 손실이다. 지금껏 지역의 관학 협력은 사실상 일방적이거나 무관심에 가까웠다.
대구‧경북의 39개 대학(일반대 13곳, 전문대 16곳) 가운데 10개 대학이 6월 20일 교육부가 발표한 정원감축 관련 기본역량 평가란 ‘예비살생부’ 명단에 포함됐다. 대구에도 1개 전문대가 들어가 있다.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대학이 문을 닫으면 지역이 입는 상흔은 기업 폐쇄에 비길 바아니다. 미국 보스턴은 하버드‧MIT 등 역내 대학의 명성이 그대로 도시 브랜드가 되어왔다.
대학과 지역은 더 이상 독립경영체가 아닌 한 배를 탄 공동운명체다. 민선 7기를 시작하는 시점에 자치단체장은 이제 지역대학을 같이 고민하고 지켜야 할 ‘동지’로 보는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동일문화 장학재단 협찬)
宋義鎬 (언론인, 대구한의대학교 교수)
경북 안동 출생
경북대 영어영문학과 졸업
중앙일보 기자(1985∼2017)
저서 『청량산엔 인문이 흐른다』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