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모 종편TV에서 방영하는 인적 드문 산속에서 혼자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을 꾸밈없이 보여주는 프로그램 ‘나는 자연인이다’를 자주 시청하면서 나도 가끔 자본주의 탈출이나 무소유의 삶을 꿈꾼다. 그리곤 청송 두메산골에서 그 처럼 자연인으로 살았던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게 된다.
지금 60세 전후 연령대에선 기억하겠지만, 모두가 가난했을 땐 소비행위가 단순했다. 가난한 가계에서 나오는 소득은 모두 생존을 위해 써야 했으므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알았다.
대부분 사람들이 기본적인 의식주만 해결되면 큰 불만이 없었고, 그 이상 원하는 것을 사치로 알았다. 그땐 대부분의 상품이 사용되기 위해 만들어졌다. 옷은 입기 위해서, 음식은 먹기 위해서 만들어졌다. 추위로 부터 몸을 보호하고, 배고픔을 면하기 위한 ‘사용가치’가 최대 가치였던 것이다.
세월이 흘러 삶이 풍요로워지면서 사용가치는 뒷전으로 밀려났다. 소비는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욕구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기업들도 다양한 홍보루트를 통해 끊임없이 소비자들의 욕구를 자극하고, 이를 실천에 옮기도록 유혹하고 있다.
한국사회가 자본주의를 리드하는 미국보다 더 자본주의적이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자본주의의 역기능적 측면이 아무 여과 장치 없이 우리사회에 들어오고 있다는 의미다.
몇 년 전 수입 브랜드가 한국에 들어오면 가격이 2~5배 뛴다는 뉴스와 함께 스타벅스 커피 가격이 세계에서 한국이 가장 비싸다는 조사결과가 발표되기도 했었다.
최근에는 프랑스의 명품 브랜드인 에르메스가 한국 VIP만을 상대로 은밀하게 진행한 세일행사가 화제가 됐다. 장인들이 손수 제품을 만드는 에르메스는 명품 브랜드 중에서도 최고가로 통한다. 가방이나 의류 등 주요 품목은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을 호가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명품 브랜드들이 온라인 판매를 시작한 현재까지도 오프라인 판매를 고집하고 있다.
언론 보도에 의하면 에르메스는 지난달 하순 약 660㎡(200평) 규모의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 영빈관 연회장을 빌려 ‘프라이빗(개인) 세일’ 행사를 열었다. 고객들은 초대장의 바코드로 신원확인 뒤 입장했다고 한다. 행사 마지막 날인 사흘째 이른 아침에 연간 5천만원 이상 물건을 구매한 고객이 줄을 서서 기다렸다고 하니 우리나라 에르메스 VIP고객의 소비수준을 조금이나마 짐작해 볼 수 있다.
VIP만을 대상으로 진행되는 이러한 비공개 할인 행사는 소비자에게 특별대우를 받는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에 더더욱 충성도를 높일 수 있다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다. 에르메스 세일행사는 ‘인간 차별화’를 마케팅 수단으로 삼는 자본주의의 전형을 보여주었다는 게 내 생각이다.
상품에 대한 이러한 과시적 소비를 ‘물신주의’라며 비판한 학자가 헝가리 출신 마르크스주의자인 게오르크 루카치(1885~1971)다. 노동의 땀이 섞인 상품 고유의 사용가치를 도외시하고, 소비행위를 교환가치로만 여겨 필요이상으로 가격을 상승시키는 부류를 루카치는 물신주의자라고 공격했다.
에르메스 같은 수입명품이 한국인을 ‘봉’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은 결국 일부 부유층의 명품 물신화 탓이다. 루카치는 물신화 이론이 인간관계에서도 적용된다고 한다. 교환가치가 사용가치보다 우위를 차지함으로 인해 인간관계도 기계적이고 비인간적인 면으로 흐른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지나친 물신주의로 흐르게 되면 인간의 삶이 메마르게 되고, 이로 인해 구성원들 간의 갈등이 심화될 경우 사회적 불안정이 커질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소비욕구가 자본주의 사회를 지탱하긴 하지만, 인간을 죽은 기계(상품)와 동일시해서야 되겠는가.(동일문화 장학재단 협찬)
심충택
(언론인,대구경북언론인회 부회장)
경북대학 치과병원 상임감사
대구문화재단 이사
대구지방법원 조정위원
전)영남일보 편집국장,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