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디미방』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 본 책 이름일 것이다. 반가의 안주인이 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글 요리서다.
경북의 북부지역을 중심으로 146가지 음식 조리법이 나온다. 가루음식과 떡 종류가 18종, 어육류가 74종, 술 51종, 식초류 3종 등이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것도 있고 새로 개발한 음식도 있다.
식재료의 특성 등을 반영한 17세기 중엽 식품과학 저술이다. 기록된 음식은 2015년 세계물포럼에서 대통령이 주재하는 오찬 메뉴로 재현돼 한국 맛의 원류를 선보였다.
덕분에 책을 쓴 정부인 안동 장씨도 알려졌다. 장계향(1598∼1680)이 본명이다. 이 요리서만 알면 그를 음식 전문가쯤으로 떠올릴지 모르겠다. 그의 진면목은 실상 『음식디미방』의 유명세에 가려져 있다.
장계향은 영해의 재령 이씨 이시명과 혼인한 뒤 경북 영양군 석보면 두들마을을 처음 열었다. 후손들이 입향조 이름을 입에 올리기가 뭣해 최근 ‘의현당(宜賢堂)’이란 당호를 지었다. 폭염이 이어지던 7월 하순 두들마을을 찾았다.
그늘이 있는 곳은 인지천(仁志川)을 따라 언덕에 조성된 숲뿐이었다. 대부분 수령이 400년에 가까운 도토리나무다. 하천을 두른 벼랑 바위에 ‘낙기대(樂飢臺)’란 흰 글씨가 선명했다. 넷째 아들 이숭일이 ‘배고픔을 즐긴다’는 의현당의 정신을 새긴 것이다.
때는 병자호란 직후. 굶주린 백성들이 먹을 것을 찾아 떠돌던 시절이다. 의현당은 만석꾼 집 며느리였지만 수년 전 도토리를 심어 놓은 두들마을에 새 살림을 차리고는 구휼에 팔을 걷어붙였다.
흉년이 들어 유랑민이 밀려들면 집 밖에 솥을 걸어 주인과 객이 똑같이 도토리 죽을 쑤어 허기를 면했다. 살림이 나기 전엔 영해에서 시아버지와 함께 구휼 활동을 했다. 처음에는 곡식을 나눠 주고 그게 떨어지면 집안에서 일하던 사람을 산으로 보내 도토리를 주워 죽을 쒔다.
그렇게 해서 많게는 하루 300여 명의 배를 채웠다. 여성의 세심함은 옷으로도 옮겨갔다. 겨울이면 빈민들이 추위에 떠는 것이 가장 무서운 고통임을 깨닫고는 노비들을 데리고 길쌈을 해 옷을 만들었다.
두들마을 추모 공간에 ‘인애간측(仁愛懇惻, 사랑하고 간절히 돌본다)’이란 편액이 걸려 있는 이유다. 가난한 사람들과 나눔을 실천한 여성 사회사업가라고나 할까.
의현당 부부는 형제가 똑같이 유산을 받았지만 두들마을로 살림이 날 때 상속을 거부한다. 대신 남편 이시명이 향시 별과 1등을 차지해 아버지가 상으로 내린 토지만 챙겨 영양으로 나왔다.
노력해서 일군 재산이 아닌 것은 가져가지 않는다는 게 의현당 부부의 소신이었기 때문이다. 재산 상속을 둘러싸고 자식들이 지분 때문에 의를 끊기까지 하는 요즘 세태에 던지는 화두다.
알려진 대로 의현당은 학봉 김성일과 서애 류성룡을 이어 퇴계 이황의 학문을 정통으로 이은 경당 장흥효의 무남독녀다. 그런 가문이었지만 경당은 제자 이시명의 됨됨이에 끌려 자기 딸을 재취로 시집보냈다.
의현당은 전실 1남1녀 등 자녀가 모두 10남매나 됐지만 혼사를 치를 때는 전실 소생 자녀에게 혼수를 더 많이 장만했다고 한다. 집안에서 화목을 실천한 방법이다. 이돈 종손은 당호 의현당에 붙인 ‘의(宜)’의 뜻이 바로 ‘시집가서 그 집안을 화목하게 한다’는 의미라고 설명한다.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1분기에 이어 2분기에도 소득 하위 20%의 가구소득이 급락했다. 이에 따라 저소득 가구와 고소득 가구 사이의 격차가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가장 크게 벌어졌다.
올해 2분기에 하위 20% 가구인 소득 1분위의 가계소득은 월평균 132만4900원으로 1년 전보다 7.6% 줄었다. 이에 비해 상위 20% 가구인 5분위의 가계소득은 월평균 913만4900원으로 한해 전보다 10.3%나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소득증가율이 두 자릿수를 기록한 것도 처음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빈부 격차가 오히려 극심해진 것이다. 청와대는 저소득 가구의 소득 감소가 심각한 상황이지만 빠르게 개선 될 요인이 보이지 않아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무슨 방법이 저소득층을 그나마 보듬을 수 있을까.
빈부 격차 확대 통계를 접하면서 만석꾼 집안 며느리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상류층의 의무)를 떠올린 까닭이다.
(동일문화 장학재단 협찬)
宋義鎬 (언론인, 대구한의대학교 교수)
경북 안동 출생
경북대 영어영문학과 졸업
중앙일보 기자(1985∼2017)
저서 『청량산엔 인문이 흐른다』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