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환 작가- 대구출생 .대구성광고 졸업 .경북대 독문과 졸업 <주요저서>마음 중 단편 .대불(시집) .김대중 .한국전쟁 언저리 .금호강의 영혼(시집)
#매주 목요일 연재
지하국가2
1. 다섯 왕비의 씨앗 싸움
왕은 육체적, 정신적으로 지치기 시작한다. 여인들의 시기, 질투로 머리가 아프고 숨이 답답한 지경이다. 그렇게 현명한 솔로몬왕이 한 아기의 친 엄마를 찾아내는 일을 해냈지만 말년에는 700명이나 되는 후궁들로 인해 분별력이 떨어지고 그의 사후 이스라엘은 두 나라로 분열되었다. 학생 시절 미션 스쿨에서 가르쳐주는 일은 솔로몬왕의 화려한 전반부만 가르치고 700명이나 되는 후궁이 있었다는 일은 30~40년이 지나야 알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어린 학생들에게 후궁을 얘기해도 잘 알아듣지도 못할 것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한 남자를 두고 여러 여인이 잠자리를 나누어야 하는 물개 집단과도 비슷한 일이 실제 상황이다. 한 마리 물개 수컷이 50여 마리의 암컷을 거느리는 식이다. 유인원 중에도 물개 같은 집단이 오히려 개체수가 더 잘 보존되고 멸망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니 알다가도 모를 자연이다. 하기야 가장 튼튼하고 똑똑한 유전자를 유지, 전달하려는 실제로 그렇게 되는 자연현상으로 인해 가장 강하고 적응력이 높은 쪽이 살아남는 것은 당연한 이치인지도 모른다. 결국은 악독하게도 씨앗 싸움을 잘한 왕비의 자손이 번성한다는 말인가? 왕은 수컷이므로 성질상 자식이 죽던 말든 내버려두는 무관심, 무성의로 일관한단 말인가? 육체적, 정신적으로 지치지 않기 위해선 양육과 자식의 성장에는 마음이 별로고 젊은 여자만 또 후궁으로 맞이할 생각만 하고 있단 말인가? 현대의 의학도 부인이 외도를 하면 그 사실을 남편이 확인하는 순간부터 남자의 정자생산량이 많아진다고 한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왕은 젊은 왕비들의 외도를 막을 재간이 없다. 환관, 내시들로 채워 넣은 궁궐이지만 인간이 하는 일에 허점이 있지 않을 수가 있나? 왕비들의 성욕 또한 드세고 하루 종일, 일 년 내내 달리 하는 일도 없으니 무엇으로 쉽게 욕망의 불길을 잠재울 수 있나? 채워지지 않은 젊은 여인들의 힘은 무엇이든 해결을 보아야 할 텐데 뾰족한 묘수가 떠오르질 않는다. 사이버 인조 청년을 만들어 볼까나! 왕비들도 남편을 수백 명 만들기로 한다면 일 년에 한 명만 임신이 되는데 수백 명을 임신할 수 없지 않은가? 그러니 가장 좋은 것을 택하려 할 것이 아닌가? 남자와 여자의 차이가 있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왕비들은 왕과 같이 많은 남자들을 차지하고 한 번에 수십, 수백 명의 아이를 낳고 싶지만 어렵다. 많은 남자들과 성관계를 가진다 할지라도 일 년에 한 명이다. 이것을 수백 명으로 인위적으로 늘일 방법을 연구하여 성공한다 해도 인구가 너무 많이 불어나 해결책이 나올지 문제다. 결국은 적절한 인구를 자연적으로 조절하는 것이 일 년에 한 명 정도 낳도록 정해진 것 같기도 하다. 이것을 깨트려 남자 같이 한다면 지구가 수백 개, 수천 개 만들어져야 하는데 그것이 가능한가? 참으로 어렵겠다! 그러면 영원히 남자와 여자의 성역할은 바뀌기가 쉽지 않다는 결론인데. 지구를 수만 개 만든다면 가능하다. 우주로 영역을 넓히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무한대의 공간과 자원이 있기 때문이다. 우주를 사용하는 능력이 우선인가? 여자의 출산 능력을 남자처럼 무한대로 넓히는 것이 우선인가? 그런데 왕비들은 두 가지 어려운 문제를 풀어내자 성역할이 남자와 동일해지는 상황이 도래한다. 더 골치 아파진다. 다섯 부인들로부터의 50여 명의 왕자와 공주는 잘 자라고 있지만 다 꿰뚫기도 쉬운 일이 아니다. 정해진 원칙대로 해야만 골치가 덜 아프지만 장자가 바보천치면 또 문제다. 멀쩡한 장자도 간혹 바보로 몰리기도 한다. 자신의 뱃속에는 한 아이만, 간혹 쌍둥이도 태어나지만 일 년에 수백 명의 씨앗이 다른 아이는 결국 시험관이나 인공적인 방법으로 태어난다. 수컷 남자 왕처럼 일일이 챙기지 않는 무성의하고 무감각한 양육이 된다. 상황은 남자와 같이 벌어졌지만 세부적인 매뉴얼이 작동되지 못하니 더 혼란스러운 듯하다. 당장 지구가 수천 개 만들어져야 한다. 지구도 수천 개가 만들어졌다. 왕비 자신은 그 많은 자식을 스스로 키울 수가 없다. 10명이 고작이다. 나머지 수천, 수만 명의 자식은 자신의 손을 떠나 인위적으로 양육되는 이상한 꼴로 진행된다. 인공지능을 통해서는 어떻게 수만 명의 자식이 생활하고 성장하는지 알 수는 있지만 감정, 에너지, 힘의 한계에 부딪혀 모르는 편이 속이 편하고 육체적으로도 괴로움이 덜하다. 광대무변한 우주가 이래서 있었던 것이구나! 해답을 주는 듯도 하다. 상상력을 초월하는 크기와 넓이가 상상력을 넘어서는 인간의 땅으로 만들어 질 수도 있다. 몸이 불편하고 배가 아픈 임신도 하지 않으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지만 너무 이상해지는 느낌도 든다. 그러면 남자와 다를 것이 없는데 어째 부자연한 마음이다. 임신도 필요 없다. 양육도 필요 없다. 그러면 무엇인가? 그래도 인간은 불어나고 생존을 계속한다. 이것이 우주국가22라는 곳이란 말인가? 그렇지만 쾌락이나, 편안함은 증가하고 불안, 수명의 제한 이런 것은 없는 것이 더 좋은 것 아니냐이다. 수명의 제한이 없다면, 생각은 해볼 수 있는 것이다. 21세기가 되자 여성들의 출산능력을 인위적으로 줄이고 있다. 평생 한 명만 낳는 일이 실제 상황이 되고 있다. 수명은 늘어나고 임신, 양육을 줄이고 있다. 이제껏 해오던 방식의 반대로 가고 있다. 넓고 넓은 우주는 존재하고 있다. 깊고 깊은 지구의 지하도 존재하고 있고, 많은 바닷물도 있다. 완전히 같아진 것은 아니나 남녀의 생물적 특성도 비슷하게 된 상황이지만 그래도 원시시대의 모계사회로의 환원은 되지를 않는다. 어차피 인간에게는 계급이 있고, 차례가 있고, 계층이 있고, 여러 가지 문화적 요소를 완벽하게 똑같게 할 수가 없다. 왕이 있으면 왕비가 있어야 하고, 아이가 있으면 어른이 있다. 궁궐제도가 영영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맞게 조금씩 변형되지만 큰 틀은 엇비슷한 구조가 많다. 합리적으로 개선된 형태 일뿐이다. 그러니 다섯 왕비가 자신의 아들을 다음의 왕으로 대를 이으려는 기본적인 권력욕은 변함이 없는 것이다.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당연지사가 머리가 아픈 것이다. 정부인, 즉 중전의 장남이면 해결이 되는데 일이 꼬이는 것이 인간사이다. 둘째 부인부터 다섯째 부인까지 우연을 바라는 마음은 너무도 깊어 필연으로 바뀌길 꿈속에서 늘 바라다가 실제가 되기를 염원한다.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인간의 처절한 노력이 때때로 결실을 맺기도 한다. 네 사람의 공통분모는 첫째 왕비의 한 명을 넘어서는 힘으로 묶여져서 공동전선을 맺고 사사건건 대통을 이을 쪽을 암묵적으로 압박하다 보니 일대사의 싸움은 첫 왕자를 지치게 한다. 피곤하면 쉬고 싶은 것이 인간이다. 도를 넘어서는 스트레스를 견뎌내는 일은 초인적 힘을 요구한다. 비슷비슷한 인간이 언젠가는 인내심의 벽에 무너진다. 이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칠 후궁들이 아니다. 후궁들은 또다시 그들끼리 또 싸워야 한다. 결국에는 한 사람으로 결정이 날 것이다. 한 세대 안에 늘 불가사의한 일이 벌어질 때가 있다. 첫째 왕자는 어릴 땐 많은 기대와 총명함으로 꽤 괜찮은 존재였으나 어느 순간부터 자꾸만 허방다리를 짚고 일이 잘 안 풀리는 경우가 많아졌다. 견제가 심해지고 사사건건 돌부리가 있었다. 은연중에 느낌이 대단히 발달하여 알아차릴 정도가 될 지경이었다. 이쯤에서는 이런 낭패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예감이 맞아떨어지는 것이다. 자신도 놀랄 수준이다. 점쟁이가 된 듯하다. 어린 자신으로서는 도저히 판단이 서지 않는 일들도 많아졌다. 쉽지가 않다. 자신이 잘못해도 대신 매 맞는 아이가 매를 맞았다. 나이 많은 대신들도 자신에게 굽실거린다. 혼자 하는 일이 없고 늘 무리가 따라다닌다. 약간이 아니라 매우 특별대우를 받는데 너무도 당연해 그런 것인지 아닌지를 알 수도 없다. 그러더니 어느 날 갑자기 그 자리가 뒤바뀌는 황당한 일이 벌어진다. 다음의 왕이다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면 모든 기준이 헝클어지고 뒤죽박죽이다. 어머니의 실망은 너무 크고 침통하여 생병, 화병이 생기게 된다. 그 화병의 화살이 그에게로 올 때는 무서움이 느껴진다. 가진 것을 잃어버린 자의 아픔이 있다. 웃음을 앗아가 버리고 깊은 나락으로 어머니를 빠뜨린 것 같다. 어머니가 힘이 없다. 생기가 없다. 좀 이상하다. 넋이 나간 사람 같다. 제 몸을 스스로 추스르지 못하는 나날이다. 무엇이 첫째 왕비를 살아나게 할 수 있을까? 왕자는 무슨 묘안이 있을까? 왕세자로, 황태자로, 있던 그였으나 황태자궁, 세자궁인 동궁을 비우고 궐 밖으로 나가야 된다. 모든 특권이 사라진다. 옷도 바뀌고 수족이던 자들도 거의 없다시피 된다. 어머니는 중전인지라 그대로 궁에 있게 되나 아들도 없는 곳에 허망하기 이를 데 없다. 둘째 왕비의 자식이 그 자리를 이을 것이란 기대도 어긋났다. 워낙 세력이 약하다 보니 셋째 왕비의 아들로 정해진다. 셋째 왕비의 세력은 궁궐 안에 꽤 많기 때문이다. 넷째와 다섯째의 자식은 너무 어려서 애초부터 대상에 들기가 힘들었다. 둘째 왕비의 자식도 궁궐 밖으로 나오게 된다. 어린 배다른 왕자들은 그대로 궁 안에 있지만 나이가 차면 내치게 될 것이다. 이제는 죽을 때까지 궁 안에 들어갈 수가 없다. 특별히 왕이 승하하거나 어머니인 왕비가 저 세상 사람이 될 경우에만 허락될 것이다. 가혹한 처사이기도 하다. 왕권이 무엇이기에 인륜의 끈을 악독하게 잘라 버릴까? 수천 년의 경험으로 인간이 만든 법이나 다름없으니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을 버리고 나니 더 큰 자유가 생기는 듯도 하다. 어디든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다. 구속하는 무엇도 거의 없다. 왕권에만 도전하지 않으면 된다. 그러면 꽤 큰 힘도 있다. 이제부터는 어릴 때부터 왕자로 받아온 교육이나 정신구조가 엄청나게 거북하고 필요 없는 상황이 전개된다. 오직 필요한 것은 한을 삭이고 마음을 억누르고 꿈을 죽이고 식물인간처럼 수명만 유지하는 삶을 당연하고도 조용하게 받아들이고 살아야 한다. 쉽지 않은 수련이다. 알고 보니 어머니와도 영원히 생이별이 되고 말았다. 아버지, 형제간도 생이별이 되고 마는 것이다. 이런 것이란 말인가? 그 참 가혹하기도 하다. 생이별은 꿈속에서도 생각지 않았는데 실제로 일어난다. 부모와 자식 간의 끈이 끊어질 수가 있으랴 싶지만 인위적으로 끊어지고 있다. 시간이 해결할 것이다. 유한한 인간의 삶 속에서 세월이 흐르면 어떻게든 될 것이다. 무계획이, 무신경이 능사라니 기가 찰 노릇이다. 바람 따라, 구름 따라 흘러가는 김삿갓이네! 방랑벽이 생기고 싶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하도 어처구니가 없어 그냥 돌아다니는 것이다. 두문불출하고 처박혀 있을 수도 있으나 젊은 몸이라 그렇게도 되질 않는다. 사실, 지상국가1은 넓고도 넓다. 우주까지 개척된 마당에 무한대의 영역이 여행지이기도 하다. 어디부터 가볼까? 어릴 적 기억을 더듬어 외갓집 근처를 자기도 모르게 가게 된다. 어머니가 살았던 사하라 사막 인공호수 옆에 세워진 땅이다. 인공 호수는 한반도 넓이만큼 크고 수량도 어마어마하다. 쌍둥이로 두 개가 있다. 물이 많아져서 모래는 보이지 않고 끝없는 긴 과수원이나 초원지대로 변모돼 있다. 낙타, 모래, 등은 자연사 박물관을 방문해야 느낄 수 있다. 지내기가 나쁜 편이 아니다. 먹을거리도 풍부하고 기후도 사막기후가 아니라 사는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한 달 내내 빈둥빈둥 놀다가 이제는 시베리아 지역으로 왔다. 여기도 인구가 엄청나게 많이 거주하고 있다. 대부분 지하에서 생활하지만 지상에서는 꽤 큰 우주선 형태의 캡슐을 타고 다닌다. 속도가 빠르니 넓은 시베리아도 일주일 이내에 샅샅이 살필 수 있다. 그러면 뭘 하며 더 머무를 수 있을까? 옛날에는 추워서 집안에서 소설이나 읽고, 실내 극장에서의 연극이 소일거리였는데 크게 달라졌단 말인가? 야외 활동이 위축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캡슐을 타면 얼마든지 돌아다닐 순 있어도 공간적 제약이 뒤따른다. 땅 밑에 세워진 지하국가2의 고민이 그대로 적용된다. 발길 닿는 대로 수만 명의 시험관 형제들이 살고 있는 우주국가22로 날아간다. 지구보다 큰 영역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자기와 유전자가 똑같고 생김새도 비슷하니 이럴 수가 있나 싶어도 희한하게 서로서로를 구별하여 잘 살고 있다. 똑같은 분신이 수만 명이 있는 이 땅은 외로움이나 한탄은 없고 무엇이나 넘쳐나는 것으로 되레 어지럽다. 동생이 수만 명이다. 자기가 가장 큰 형이니 이런 호사가 또 어디에 있나? 저절로 왕이 되어 버리다니 상황전개가 그렇게 된다. 전부 동생뿐이니 말이다. 초단위도 더 쪼개어 서열이 정해진 동생들이다. 상상하기 힘든 세상이다. 동생들의 앞길을 관리해주는 지구에서 파견된 나이 많은 신하들이 있다. 지구에서와 동일한 체제로 운영이 된다. 수많은 여인들도 이리로 와 있다. 이들은 모두 유전자가 동생들과 다른 사람들이다. 절대로 같은 유전자로 짝 지워져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왕위를 빼앗겼으나 도로 원점이 되어 더 빨리 왕위를 차지하여 실제로 왕이 되는 현실이다. 살다보니 알 수 없는 것이 인생사이다. 왕위를 잇기 위한 연습도 필요 없이 곧바로 왕이다. 지구에서 파견된 신하들이 해주는 대로 움직이고 틀을 잡아가는 한심한 왕이지만 그럴 수밖에 없다. 처음 해보는 왕이고 원래 그렇기도 하다. 어딜 가나 여자와 잠자리를 마련하여 자식을 퍼뜨려라 그것이 나라의 규칙이다. 제일의 규칙이다. 사람이 없으면 나라가 없다. 사람을 만드는 방법은 시험관아기이기도 하지만 원칙적으로 결혼하여 자식을 낳는 일이다. 여자를 고르는 특권이 주어진다. 제일 좋은, 제일 먼저, 마음에 드는 여자를 고를 수 있다. 어떤 여자가 좋은지 알기는 하지만 선택할 여자가 너무 많아 머리가 복잡한 것이다. 늘 많고 많아서 탈이 날 지경이다. 왕세자가 아닌 잠깐 동안 고통에서 벗어난 듯 했지만 또 왕이며 골치 아픈 세상의 전면에 서게 된다. 쉽게 생각하여 제일 번, 중간 번, 마지막 번의 여인을 점찍어 부인후보로 정하고 내일 마음 내키는 대로 1,2,3번 부인을 정하기로 하니 일이 쉬워진다. 그 나머지 여인들은 자신의 부친이 한 것처럼 시험관 아이나 다른 방법을 적용하면 된다. 사람의 운명이 복권 뽑는 식이라니 좀 그렇긴 하다. 자신이 살던 지구를 즉, 지상국가1을 생각하니 너무 멀고도 멀다. 왜 우주는 이렇게 크고 멀고 상상하기 어려운가? 모르겠다. 그렇게 넓은 지구보다 더 넓은 땅에서 살 수 있다니 있을 수 있는 일인가? 모르겠다. 한치 앞도 모르고 사는 인생이다. 불확실하고 불투명하고 어딘지 빈틈이 많고 불안한 인간이 이렇게 멀리 오니 또 불안하다. 알 수 없는 이 불안한 마음을 어떻게 진정할 것인가? 술에 취하여 잊어버리면 되나? 잊어버리면 되나? 싫은 기억이나 좋은 기억이나 지워지지 않는다. 조절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마음대로 되지는 않는다. 결혼식을 매뉴얼대로 예행연습을 하고 실제 상황과 다른 부분들에 대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 양가 부모는 없다. 교통수단인 말이나 가마도 없다. 가짜 부모를 행사용으로 하루짜리 부모 역할의 인물도 가공으로 세우고, 말과 가마도 모조품 형태로 만들어 다시 적용해본다. 수만 명의 동생들을 하객으로 초정할 수 없으므로 제비뽑기로 수백 명의 하객 동생을 뽑는다. 결혼식이 인위적인 느낌이 강하다. 세월이 수백 년, 수천 년 흐르면 당연하고 매끄럽고 부드러운 기분이 들것이다. 현재는 처음이라 어쩔 수가 없다. 웃기는 것이 가짜 친구도 만들고, 가짜 이웃과 가짜 친척을 만들어 결혼식을 올리는 것이다. 세월이 흘러야 지구에서처럼 문명인의 사회문화 구조가 생길 것이다. 황당한 결혼식을 치르고 가정을 만들었다. 어쨌거나 엉터리인 듯해도 그렇게 새로운 문명이 만들어지고 있다. 첫 부인 결혼식은 힘들게 했으나 둘째, 셋째 부인의 결혼식은 피곤하고 귀찮아 아주 간단하게 100분의 일로 줄여서 치르고 만다. 조금은 궁궐 같은 것이 만들어진 듯하다. 수만 명의 동생들의 결혼식도 매일 매일 전쟁을 치르듯 이루어진다. 자기가 했던 방식을 본떠서 하는 것이다. 그러나 부인은 한명만 택해야 한다. 순식간에 나라 전체가 가정이 만들어지고 체계가 어설프나마 서는 것이다. 어려움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아이를 받아본 산파가 거의 없는 실정이다. 막막하지만 지구에서 가져온 용품들과 통신망으로 연결된 지식을 통해 시행할 뿐이다. 노련한 산파가 있어야 하건만 얼치기 신랑들이 스스로 해야 한다. 그것도 상당한 양의 공부이다. 졸지에 애 키우는 일이 국가의 가장 큰 일이다. 수만 명의 왕자를 세분하여 직업을 나누어야 한다. 정말로 필요 없는 왕자의 특별교육이다. 특별교육이 현재 상황에선 오히려 짐이다. 무계획을 모든 것이 계획적이고 예측 가능하게 정리를 하려니 쉽지가 않다. 겨우 숨을 쉬려니 지구에서 아버지의 둘째 부인인 어머니와 둘째 왕자가 같이 우주국가22로 오겠다는 것이다. 굳이 거절할 것도 없고 친어머니가 아니지만 어머니도 생기고 동생도 생기고 받아들이게 된다. 우주국가22의 모습이 더 모양새가 있어 보이게 된다. 이래저래 족보관계가 복잡하다. 어머니가 있으니 심신도 안정되고 사람 사는 세상 같다. 어머니는 그에게 아주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자신이 친아들이라는 것이다. 유전자 검사를 해보니 사실이다. 동생은 친동생인 것이다. 세상에 이럴 수가 있나? 어머니 말씀이 부친인 왕의 첫째 부인, 첫째 왕비 어머니였던 분이 아이를 낳지 못해 둘째 부인, 둘째 왕비였던 친어머니가 자신을 낳아 장자로 세워 나라를 유지했다는 것이다. 새까맣게 모르고 있었고 부친인 왕도 한마디의 언급이 없었다. 머리가 혼란스럽고 충격이 크다. 친어머니는 두 왕자를 통해서도 왕통을 잇지 못한 꼴이 되었다. 그처럼 한을, 분을 삭이고 있는 지도 몰랐고, 결국은 핏줄을 찾아 멀고 먼 길을 택한 것이다. 그는 새로운 땅에서 적응하면서 너무도 황당한 인생에 대하여 마음을 안정시키고자 면벽을 하고 무념무상에 빠져본다. 달마대사처럼 9년을 면벽할 수는 없겠지만 일주일이 무난히 넘어가니 신하들이고 부인이고 모두가 너무 걱정을 하는지라 계속할 수가 없다. 행동과 사고에 제약이 가해지는 왕이다. 왕이 멋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나라의 틀에 맞게 처신해야 하니 면벽도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자유가 제한된다. 지구에서 왕세자, 황태자의 특별교육을 받던 것이나 다를 것이 없는 상황전개다. 나라 일을 챙기지 않고 면벽만 하면 왕이 아니라 참선을 하는 스님일 뿐이다. 스님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면벽을 하는 시간을 국가가 운영되도록 일을 하라는 것이다. 감정을 통제하고 개인의 번민과 고통을 나타내지 말란 것이다. 국가의 앞날과 비전을 제시하고 실천하고 일을 해야지 사사로운 것에 일주일을 얽매이는 것은 허용이 될 수 없다. 꽤 어려운 자리이다. 억압을 하고 또 꾹꾹 눌러서 나중에야 터지던 말든 더 이상의 면벽 수행은 못하게 된다. 달마의 길은 중단이다. 스스로 그만둔 일은 미련이 덜 남지만 타력에 의해 그만둔 일은 뇌리에서 쉽게 쉬워지지 않는 묘한 점이 있다. 타력에 의해 모르고 살아온 지난날도 계속 재구성해 보는 시각의 재점검, 약간 다른 각도로 돌아서서 살아온 일을 반추하여 느끼는 불필요한 일이 많이 생긴다. 일일이 양어머니, 친어머니, 렌즈를 갈아 끼고 어린 날을 되새긴다. 왕으로 할 일이 많은데 미래지향적이 아니라 과거에 목이 메는 답답한 왕이다. ‘잊게 해주오. 잊게 해주오. 과거를 모르게 잊게 해주오.’ 장계현의 허스키한 목소리가 우주국가22에 메아리친다. 왕은 지난날이 망각되지 않아서 꼬이는 것이다. 지구에서 온 동생도 과거의 끈에 많은 의문부호를 붙이고 아리송한 나날이 된다. 가장 홀가분한 표정의 사람은 어머니인 듯하다. 상당히 밝아 보인다. 어릴 적엔 어딘지 덜 밝았던 느낌의 필름이 되돌려져 느껴진다. ‘커피를 알았고 낭만을 찾던 스무 살 시절에 ……’ 친어머니를 알고 왕이 된 자신은 너무도 어리단 것을 그 스스로 마음으로 일깨우는 것이다. 나는 왕이다. 대단한 것인데. 어색함이 없어야 하건만 어딘지 생경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