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레옥잠
신미나
몸때가 오면 열 손톱마다 비린 낮달이 선명했다
물가를 찾는 것은 내 오랜 지병이라, 꿈속에서도 너를 탐하여 물 위에 공방空房 하나 부풀렸으니 알을 슬어 몸엣것 비우고 나면 귓불에 실바람 스쳐도 잔뿌리솜털 뻗는 거라 가만 숨 고르면 몸물 오르는 소리 한 시절 너의 몸에 신전을 들였으니
참 오랜 만에 당신
오실 적에는 볼 밝은 들창 열어두고 부러 오래 살을 씻겠네 문 밖에서 이름 불러도 바로 꽃잎 벙글지 않으매 다가오는 걸음소리에 귀를 적셔가매 당신 정수리 위에 뒷물하는 소리로나 참방이는 뭇별들 다 품고서야 저 달의 맨낯을 보겠네
시 한 편이 탄생하기 위해선 지구적, 우주적인 삶의 모든 경이가 함께 동참해야 가능하다. "몸때가 오면 열 손톱마다 비린 낮달이 선명했다" 우리는 1연 1행으로 된 이 시구에서 앞쪽서 이미 살핀 은유의 묘를 한껏 맛본다. '몸때'는 여자의 생리(生理)의 딴 말이다. '서답', '월경(月經)’이라 부르는 여성 생리 주기는 보통 28일 전후다. 시인은 후각의 시각화를 통해 '몸때'와 '비린 낮달'을 아주 교묘히 겹쳐 놓았다. '몸'의 성적 느낌이야 말로 본능임을 은근히 암시한다. 시인은 또 이 시행 속에 '비린'이란 시어를 씀으로써 달의 인력이 바다의 조류에만 간여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의 월경에도 그 힘이 뻗침을 참으로 알듯 모를 듯 배치한다.
그래서 2연 첫 행에 "물가를 찾는 것은 내 오랜 지병"임을 은근히 부레옥잠에 감정이입한다. 우린 이미 앞에서 왜 시인이 시 제목으로 땅에서 피는 흰 옥잠이 아니라, 물 위에 사는 부레옥잠을 선택했을까 의문했다. 바로 그것은 그 다음 행 "공방(空房)"이란 시어와 부레의 '공기 주머니', 그리고 여성 '자궁' 이미지를 서로 연상시켜 비유와 은유의 묘미를 교묘하게 처리하기 위한 고도의 시적 장치였던 것이다. 여성은 생리 기간에 가장 민감하다고 한다. 3, 4월 꽃망울이 봄바람에 가장 예민하듯, 여성은 한 달 한 개씩 생겨 정자와 결합해 아기가 되는 난자를 그냥 무의미하게 밖으로 내보내기가 본능적으로 싫은 것이다. "꿈속에서도 너를 탐하여 물 위에 공방(空房) 하나 부풀렸으니 알을 슬어 몸엣것 비우고 나면 귓불에 실바람 스쳐도 잔뿌리솜털 뻗는 거라 가만 숨 고르면 몸물 오르는 소리 한 시절 너의 몸에 신전을 들였으니" 기가 막힌 표현이다. 여자의 '자궁(子宮)'과 부레옥잠의 '공방(空房)'의 대비와 부레옥잠이 꽃 필 때 느낄 섬세한 바람의 애무 표현은 무릎을 치게 한다. 또 햇빛이 꽃봉오리의 몸을 만질 때의 떨림을 생리 때 느낀 "몸물 오르는 소리"에 일치시키는 그 시적 기교가 가히 일품이다. 신미나는 1978년 충남 청양 출생이다.
김동원(사진)
약력
경북 영덕 출생.
1994년『문학세계』`시 부문’ 신인상 수상으로 등단
1997년 제 1시집『시가 걸리는 저녁 풍경』출간
2002년 제 2시집『구멍』출간
2004년 제 3시집『처녀와 바다』출간
2007년 동시집『우리 나라 연못 속 친구들』출간
2011년 시 에세이집『시, 낭송의 옷을 입다』출간
2014년 평론집『시에 미치다』출간
2015년 대구예술상 수상
현, 한국시인협회, 대구문인협회원. 대구시인협회 이사.
『텃밭시인학교』시창작교실 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