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그래서 불러봅니다 킥킥거리며 한때 적요로움의 울음이 있었던 때, 한 슬픔이 문을 닫으면 또 한 슬픔이 문을 여는 것을 이만큼 살아옴의 상처에 기대, 나 킥킥……, 당신을 부릅니다 당신의 손바닥, 은행의 두 갈래 그리고 합침 저 개망초의 시름, 밟힌 풀의 흙으로 돌아감 당신……, 킥킥거리며 세월에 대해 혹은 사랑과 상처, 상처의 몸이 나에게 기대와 저를 부빌 때 당신……, 그대라는 자연의 달과 별……, 킥킥거리며 당신이라고……, 금방 울 것 같은 사내의 아름다움 그 아름다움에 기대 마음의 무덤에 나 벌초하러 진설 음식도 없이 맨 술 한 병 차고 병자처럼, 그러나 치병과 환후는 각각 따로인 것을 킥킥 당신 이쁜 당신……,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내가 아니라서 끝내 버릴 수 없는, 무를 수도 없는 참혹……, 그러나 킥킥 당신
* 진설 : 제사 때, 법식에 따라서 상 위에 음식을 벌여 차림
** 치병 : 치료약
*** 환후 : 상처
시는 어쩌면 제 곪은 삶의 뒤쪽을 닦는 일인지 모른다. 허수경의「혼자 가는 먼 집」은, 사랑한 '당신'과 이별의 상처가, 시적 화자에겐 참혹한 아픔으로 다가오는 시이다. 이 시를 읽고 있으면 ‘당신’이라는 말의 화법이 참 조곤조곤 하다. 2인칭으로 사용된 ‘당신’은, 꼭 곁에 누가 있는 것처럼 주절주절 혼자 넋두리를 풀어낸다. 시어 ‘집'은 '당신'에게 있어 사랑과 추억이 깃든 곳이자, 상실과 이별이 함께한 슬픔의 공간이다. 시에 있어 ‘집’의 의미는 인간이 잠시 쉬고 가는 쉼터이며, 죽음의 또 다른 상징이다. 당신은 먼 곳(저승)에 있고 끝내 화자의 상처는 치유 받지 못한다. 사람은 누구나 미래의 무덤 하나씩 갖고 산다. 피해 갈 수 없는 엄혹한 실존이 우리를 한없이 외롭게 한다.
이 시 속에 보면 ‘킥킥거리며 한때 적요로움의 울음이 있었던 때, 한 슬픔이 문을 닫으면 또 한 슬픔이 문을 여는 것’이란 구절이 나온다. ‘킥킥’이란 청각적 시어사용이 묘하다. 시 속에 청각적 이미지를 사용하면, 즉각적으로 독자들의 호기심을 증폭시키는 효과가 있다. 울음과 슬픔의 상황에서에서 생뚱맞게 '킥킥거린다'는 웃김의 시어 사용은 ‘낯설기 하기’이다. 그런데 이 낯선 불협화음이 도리어 묘한 매력으로 다가선다. 이 웃음은 아마 웃음도 울음도 아닌 화자만이 느낀 생의 비극이자 허탈이겠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한 시인의 상실감이, 시 속 화자에게 감정 이입돼 보편적 죽음의 의미로까지 심화 확대된다.
「혼자 가는 먼 집」은 어쩌면, 화자가 영원히 도달할 수 없는 인간의 이상향에 대한 소망처럼 느껴진다. 인간은 길 위에서 태어나 길 위에서 죽는다. 죽음이 있기에 늘 불안정하다. 누구나 혼자서 삶의 무게를 감당해야 한다. 가족과 친구, 사랑하는 사람, 그 어떤 것도 ‘나의 부재’를 대신 해 줄 수 없지만, 화자는 ‘당신’을 통해 잠시 위로 받는다. 허수경은 “50년대 정서로 현실의 삶을 응시하고 있으며, 통속적 가락으로 밑바닥 인생의 넋두리를 잘 형상화”했다. 그리고 “소위 말하는 ‘뽕짝’ 가락을 지녔으며, 진부하고 청승스런 대중 가락을 훌륭히 시 속에 재생”(이남호)시키는데 성공한 시인이다. 아버지의 죽음 충격으로 92년 독일로 유학을 떠났지만, 2018년 머나먼 타국에서 54세의 아까운 나이로, 저 하늘 위의 별이 되었다.
김동원(사진)
약력
1962년 경북 영덕 출생.
1994년『문학세계』‘시 부문’ 신인상 수상으로 등단.
1시집『시가 걸리는 저녁 풍경』, 2시집『구멍』, 3시집『처녀와 바다』, 4시집『깍지』출간. 동시집『우리 나라 연못 속 친구들』,『태양 셰프』출간. 시 에세이집『시, 낭송의 옷을 입다』, 평론집『시에 미치다』출간. 시평론대담집『저녁의 詩』편저.
2015년 대구예술상 수상.
2017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동시당선.
현재 대구시인협회부회장. 대구문인협회시분과위원장. 한국시인협회원.『텃밭시인학교』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