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과 나비
이자규
가볍지 않은 생각이
가볍지 않은 바람을 앉히면
소리 없는 말이 그려진다
제자리의 힘을 잃은 사물처럼
차이다가 버려진
돌에 돌의 둘레만한 바람이 앉는다
돌의 뿌리가 생각의 중심을 잡고
꿈꾸는 자리
바람의 무게만큼 날아오르는 나비 나비들
경남 하동 출생인 이자규 시인의 아름다운 서정시 「돌과 나비」는, 우선 시적 분위가가 구름 속 손을 넣는 것처럼 감미롭다. ‘돌’이라는 ‘광물’과 ‘나비’라는 ‘곤충’의 이질적 소재를 합치시킨 시적 발상은 놀랍다. 달리 말해 돌을 ‘지상 또는 현실’로, 나비를 ‘하늘 또는 꿈(이상)’으로 본 서정시의 기본 두 축을 연상시킨다. 시인은 ‘돌’을 통해 존재의 무거움을 ‘나비’를 통해 그 가벼움을 대립시키면서, 만물이 서로 유기적 세계임을 암시와 상징으로 형상화 한다. 어떤 점에선 「돌과 나비」는 읽는 이들에게 시적 모호성을 떠올리게 한다. 말라르메는 ‘시는 관념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 낱말로 쓰는 것’이라고 말했다. 시적 모호성은 단어뿐만 아니라, 낱말과 낱말, 행과 행, 연과 연의 엉뚱한 배치에서 온다고, 그는 보았다. 은유, 상징, 역설, 시적 비약 이런 시법은, 논리적 문장보다 훨씬 더 많은 뜻을 내포한다.
「돌과 나비」 2연의 “돌에 돌의 둘레만한 바람이 앉는다”란 멋진 시행을 보자. 표면적으론, 돌은 ‘보이는’ 세계를, 바람은 ‘보이지 않는 세계’를 은유한다. 그러나 행간의 심층을 뜯어보면, 바람을 질량으로 본 놀라운 직관이 숨어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눈에 보이는 이미지로 바꾼 시적 기교는, 볼 만하다. 또한 3연의 “돌의 뿌리가 생각의 중심을 잡는다”란 시구 역시 예사롭지 않다. 정말 시인의 눈엔 ‘돌의 뿌리’가 보이는 걸까. 왜 수석(水石)에 몰입한 분들을 보면, 아침마다 돌에게 물을 주지 않는가. 아마 이자규도 자신의 ‘시의 돌’에 날마다 물을 주어 기른 듯하다. ‘돌의 뿌리’는 시인이 시작(詩作)을 할 때, 그만큼 사물과 하나 되는 경험이 있어야만 표현 가능한 높은 수준의 은유태(隱喩態)이기 때문이다. 물론 현대시 속의 ‘나비’의 의미 또한 많은 상징을 함의한다. 현대인들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과 매순간 부닥치는 죽음의 불안을, ‘나비’는 복합적으로 규정한다.
1962년 경북 영덕 출생. 대구에서 성장.
1994년『문학세계』‘시 부문’ 신인상 수상으로 등단
1997년 제 1시집『시가 걸리는 저녁 풍경』출간
2002년 제 2시집『구멍』출간
2004년 제 3시집『처녀와 바다』출간
2007년 동시집『우리 나라 연못 속 친구들』출간
2011년 시 에세이집『시, 낭송의 옷을 입다』출간
2014년 평론집『시에 미치다』출간
2015년 대구예술상 수상
2016년 제 4시집『깍지』출간
2017년 매일신문 신춘문예동시당선
2017년 동시집『태양 셰프』출간
2018년 시 대담 평론집『저녁의 詩』편저
2018년 대구문학상, 최치원문학상 대상 수상.
한국시인협회, 대구시인협회 부회장. 대구문인협회시분과위원장.『텃밭시인학교』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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