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단
이향
소리에 심을 박으라고 선생은 말하지만 그게 뭔지 잘 모르겠다 그것만 잘 하면 다 된다는데
아득하다
심이란 진흙탕 물을 다 가라앉힌 샘물 같기도 하고 어둠 속에서 만난 팽나무의 굵은 허리 같기도 한데
목단을 본다
어디까지 내려갔다온 것일까
무엇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밤에 찔렸던 것일까
마음에 소리를 심으라는 말이 또 붉어온다
심이란 독약 든 사발 같기도 하고 흰 눈 소복한 은그릇 같기도 한데
목단은 뙤약볕에 한껏 벌어지고 있다
이향의 시,「목단」은 읽을 때마다 행간의 표정이 달라지는 묘한 매력이 있다. 이 시의 핵심은 ‘소리에 심을 박다’란 시구이다. 「목단」을 따라가 보면, 화자인 소리꾼이 어떻게 하면 가장 목소리를 잘 낼 수 있을까를 치열하게 고뇌하는 내용이다.
원래 ‘판소리’는 한 명의 소리꾼이 한 명의 고수(북치는 사람) 장단에 맞춰 이야기를 엮어가며 연행하는 즉흥 장르이다.「목단」은 어찌 보면, 계면 성음의 서편제 풍으로, 슬프고, 애조를 띤 데다 가냘픈 느낌을 시 행간 사이로 슬몃 드러낸다.
명창이 되려면 판소리의 사설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장단, 조, 성음으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목단」속에도 나오지만, 소리에 ‘이면(裏面)을 그린다’ 또는 ‘심을 박는다’라고 하는 말은, 타고난 자신의 음색과 성량을 바탕으로 피나는 수련을 계속해서 ‘득음’하라는 선생의 염원이 ‘심’ 한자에 담겨 있다. 구전심수(口傳心授)와 일맥상통한다. 스승의 소리를 마음으로 받아 제자에게 전한다는 뜻이다.
3연의 “심이란 진흙탕 물을 다 가라앉힌 샘물 같기도 하고 어둠 속에서 만난 팽나무의 굵은 허리 같기도 한데”라는 시구는, 모호함의 절정이다. 최고의 소리꾼은 목성을 끊임없이 계속하여 질러가며 목에서 피를 토하면서도 부단히 연습해, 통달명랑(通達明朗)한 소리의 경지까지 가야 한다. 그리하여야만 마침내 벽공을 뚫을 듯, 광활한 지역을 울려 덮을 듯, 그 웅장 쾌활한 성량은 신비에 도달한다. 청중들이 소리꾼의 성음만 듣고도 사설에 담긴 온갖 희로애락을 다 이해할 수 있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그래서 명창들은 이러한 성음을 얻기 위해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는 지난(至難)한 수련을 거듭하는 것이다.
그럼, 왜 이 시 속에서 목단을 시의 소재로 등장시켰을까. 사실 ‘목단’의 꽃 피우는 행위와 소리꾼이 명창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과 시인의 밤낮 없는 시작(詩作) 행위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고도의 은유이다. 목단이 뙤약볕에 한껏 벌어지기 위해서는, 독약 든 사발을 마셔야 할 만큼의 각오가 되어있어야만 꽃을 피울 수 있음을, 화자는 ‘심’을 통해 역설로 독백한다.「목단」은 그녀의 첫 시집《희다》(2013, 문학동네) 속에 수록되어 있다. 시집《희다》는 몽환과 소곤거림과 은폐의 시학으로 가득 차있다. 사물들 간의 불일치를 통해 본 불협화음의 화음을 이룬다. 시인은 이런 웅얼거리는 독백을 통해, 고립된 자아의 모순을 은유로 은폐하고 있다.
1962년 경북 영덕 출생. 대구에서 성장.
1994년『문학세계』‘시 부문’ 신인상 수상으로 등단
1997년 제 1시집『시가 걸리는 저녁 풍경』출간
2002년 제 2시집『구멍』출간
2004년 제 3시집『처녀와 바다』출간
2007년 동시집『우리 나라 연못 속 친구들』출간
2011년 시 에세이집『시, 낭송의 옷을 입다』출간
2014년 평론집『시에 미치다』출간
2015년 대구예술상 수상
2016년 제 4시집『깍지』출간
2017년 매일신문 신춘문예동시당선
2017년 동시집『태양 셰프』출간
2018년 시 대담 평론집『저녁의 詩』편저
2018년 대구문학상, 최치원문학상 대상 수상.
한국시인협회, 대구시인협회 부회장. 대구문인협회시분과위원장.『텃밭시인학교』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