碧巖錄을 읽다 2
노태맹
1.
어떤 스님이 雲門 스님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부처와 조사를 초월하는 말입니까?”
“도너츠!”
―허허, 이런. 雲門의 하늘 한가운데가 열렸다.
2.
늦은 저녁 김밥 天國
떡라면에 젓가락질하며
유선 TV에 뚫어져라 시선을 박고 있는 나는
이를테면 연옥 앞에 와 대기하고 있는 것 아닐까,
분명 이곳은 아닌 곳을 향해 있는,
창 밖 고양이 한 마리
어둔 인도 위 웅크리고 앉아
라면 국물 마시는 나를 응시하고 있다.
여기로 뛰어들고 싶은 것일까,
창 이쪽도 펄펄 끓어넘치기 직전의 국솥 같은 것이거늘.
“어떤 것이 인민과 悲劇을 초월하는 말입니까?”
“옜다, 도너츠!”
3.
산허리에 얹힌 구름 그림자
여름숲에 엉겨 걸리다.
그림자만 버려두고
회색 뭉게구름 가 버린 후
여름숲 한 귀퉁이 해질녘까지 축축하다.
그림자 없는 구름은 끝내 비 되지 못할 테고
숲은 어두운 빗소리 계곡물 소리만 얻는다.
허니 이제 요량해 보라,
雲門 스님의 허기를 이제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노태맹(1962~, 창녕 출생)은 시 쓰는 철학자, 철학하는 의사이자, 사드 철회를 위해 삭발을 감행한 실천적 지식인이다.
「벽암록을 읽다 2」는 시인의 세 번째 시집 『벽암록을 불태우다』 (삶창, 2016)에 수록되어 있다. 자신을 마르크스주의자라고 소개한 한 줄은, 그의 안쪽을 살피는데 유효하다. 그는 이번 시편들을 쓸 때 ‘벽암록’에서 이미지를 훔쳐왔다고 하였다. 하여, 『벽암록』이란 어떤 책인가? 설두선사와 원오선사에 의해 만들어진 공안록(公案錄)으로 유명하다. 노태맹의 시들은 바로 벽암록 중 옛 공안(公案)의 시를 읊은 송고(頌古)에 해당한다. 공안은 사구(死句)와 활구(活句)로 이뤄지는데, 사구란 언어해석으로 그 뜻을 알 수 있는 것이고, 활구는 언어해석으로 그 뜻을 알 수 없는 것으로써, 흔히 우리가 말하는 화두(話頭)이다. 벽암록 해설을 하신 석지현 스님은 “ ‘공안참구(公案參究)’는 버리는 과정이라고 하였다. ‘생각, 감정, 선입관, 지식을 버리고 바보천치가 될 때 ’활구‘의 문이 열린다.”
〈“어떤 것이 부처와 조사를 초월하는 말입니까?” / “도너츠!”〉말이 되는 것도 같고, 말이 안 되는 것도 같다. 이 시의 행간은 놀라운 비약이자, 의미의 절벽이다. 시가 시 아닌 것으로 이루어져있듯, 그의 시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이미지의 안팎이 여일(如一)하다. 무엇이 처음이고 끝인지 알 수 없다. 이미지들을 열어 이미지를 넘어서고 있다. 무의미가 의미의 단절이 아니라, 의미를 찾아가는 ‘허공의 길 내기’이듯, 「벽암록을 읽다 2」는, 화두와 현실이 손바닥과 손등처럼 하나로 통한다. 이런 류의 선문답 시는 부지불식간(不知不識間)에 깨닫게 된다. 천천히 호흡하며 한 행 한 행 시어들을 뜯어먹다보면, 어느 순간 쑤욱 가슴으로 ‘그 무엇’이 들어온다. 그 세계는 마치, 고양이가 국물을 쳐다보며 뛰어들고 싶어 하는 세계이자, 펄펄 끓어넘치기 직전의 국솥 같은, 모순의 세계이기도 하다.
하여, 시인은 다시 묻는다.〈“어떤 것이 인민과 悲劇을 초월하는 말입니까?” / “옜다, 도너츠!”〉이 시구는 사회과학적인 접근을 통해 묻고 답한 ‘禪과 빵’의 관계다. 1920년대 신마르크스주의(Neo-Marxism)를 연상시킨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나타나는 비인간적인 문화와 인간 소외를 딛고 나온 새로운 사상 말이다. 노태맹의 자기 검열은 엄혹하다. “침묵하고, 공부하고, 고민하고, 함부로 말하지 않고, 될수록 깨어 있으려고 노력한다.”〈허니 이제 요량해 보라, / 雲門 스님의 허기를 이제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노태맹의 시는 약자 편에 서서 투쟁하는 투쟁가의 모습과 시집『벽암록을 불태우다』처럼, 관조와 초월의 시각을 마르크스주의에 버물린 철학시의 경계선에 선 듯 하다. 결국 「벽암록을 읽다 2」에서 그가 궁극을 향해 가리킨, 묻고 답하려 한 것은, 손가락일까, 손가락을 통해 가리킨 달일까. 아님, 운문 스님이 궁구한 ‘허기’일까, 속세의 ‘도너츠’일까. 물론 그것들은 ‘생과 사’, ‘시와 非詩’ 사이, 그 어디쯤일 것이다. 하여 노태맹의 시는, 시 이전에 놓이기도 하고, 시 이후에 가 있기도 한다. 죽음의 비극이나 회의가 아니라, 살아남은 자들의 따뜻한 시선이, 禪의 음각(陰刻)을 통해 시의 양각(陽刻)으로 드러난다.
1962년 경북 영덕 출생. 대구에서 성장.
1994년『문학세계』‘시 부문’ 신인상 수상으로 등단
1997년 제 1시집『시가 걸리는 저녁 풍경』출간
2002년 제 2시집『구멍』출간
2004년 제 3시집『처녀와 바다』출간
2007년 동시집『우리 나라 연못 속 친구들』출간
2011년 시 에세이집『시, 낭송의 옷을 입다』출간
2014년 평론집『시에 미치다』출간
2015년 대구예술상 수상
2016년 제 4시집『깍지』출간
2017년 매일신문 신춘문예동시당선
2017년 동시집『태양 셰프』출간
2018년 시 대담 평론집『저녁의 詩』편저
2018년 대구문학상, 최치원문학상 대상 수상.
한국시인협회, 대구시인협회 부회장. 대구문인협회시분과위원장.『텃밭시인학교』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