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서원’이 6일(아제르바이잔 현지시간) 유네스코(UNESCO, 국제교육과학문화기구)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6월 30일부터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개최된 제43차 세계유산위원회는 우리나라가 신청한 ‘한국의 서원’을 세계유산에 등재키로 최종 결정했다. 이로써 ‘한국의 서원’은 우리나라의 14번째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세계유산으로 등재 결정된 ‘한국의 서원’은 16∼17세기에 건립된 국내 9개 서원으로 ▲우리나라 최초로 건립된 서원이자 사액서원인 소수서원(영주) ▲지역 출판문화를 주도하는 등 서원의 출판과 장서의 기능을 보여주는 탁월한 사례인 옥산서원(경주) ▲한국의 서원 중 학문 및 학파의 전형을 이룬 대표적인 서원인 도산서원(안동) ▲자연과 조화된 한국 서원 건축을 대표하는 병산서원(안동) 등 도내 4개 서원을 비롯해 경남 함양의 남계서원, 전남 장성의 필암서원, 대구 달성의 도동 서원, 전북 정읍의 무성서원, 충남 논산의 돈암서원 등이다.
소수서원은 풍기군수 주세붕이 중종 38년(1543년)에 ‘백운동서원’이라는 이름으로 건립한 서원으로 서원 교육, 제향과 관련한 운영 규정을 처음으로 만들어 이후 세워진 서원 교육 규정에 영향을 미쳤다.
소수서원은 13세기말 우리나라에 최초로 성리학을 원나라(1260-1368)에서 도입한 인물로 이 지역 출신인 안향이 생전에 공부했던 장소다. 주요 배향인물로는 안향, 안축, 안보, 주세붕이 있다.
회재 이언적 선생을 배향한 옥산서원은 누마루 건축물을 처음으로 서원에 도입하고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살아남은 47개 서원중 하나다.
옥산서원은 입학규정, 교육 평가 내용과 관련된 고문서가 소장되어 있어 서원의 교육 방식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옥산서원에는 서원의 교육제도와 관련하여 원생의 선발과 평가에 대한 자료가 잘 보존되어 있다.
도산서원은 안동 출신으로 중국에서 전래된 성리학이 우리나라에서 정착되고 체계화하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한 퇴계 이황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고 추모하기 위해 1574년 지어졌다. 1614년에는 이황의 제자였던 조목(1524-1606)도 함께 종향되었다.
서원이 학문과 학파의 중심 기구로 발전하는 한국 서원발전의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강당이 비대칭으로 구성된 특징이 있으며 탁월한 자연 경관으로 인하여 일대의 경관을 묘사한 다양한 작품들이 남아 있다.
병산서원의 전신은 풍산현에 있던 풍악서당으로 고려때부터 사림의 교육기관이었으며 1572년 서애 류성룡 선생이 지금의 병산으로 옮겼다. 1662년에는 류성룡의 아들이자 그의 학문을 계승한 류진(1582-1635)을 종향하였다.
서원을 교육기관으로서의 기능뿐만 아니라 만인소를 조선시대에 최초로 작성하는 등 공론장으로서의 서원 역할을 적극적으로 실천한 곳이며 많은 학자들의 수용이 가능한 큰 규모의 만대루는 자연경관과 조화의 탁월성을 보여준다.
병산서원 목판은 2015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한국의 유교책판’의 일부로 포함되어 있다.
동아시아에서 성리학이 가장 발달한 사회였던 조선 시대 각 지역에서 활성화된 서원들이 성리학의 사회적 전파를 이끌었다는 점과 서원의 건축이 높은 정형성을 갖췄다는 점이 세계유산 등재에 필요한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Outstanding Universal Value)’로 인정받았으며 개별 유산의 진정성과 완전성, 보존관리계획도 충분한 요건을 갖춘 것으로 평가 받았다.
경북에서는 지난 1995년 석굴암․불국사가 세계유산에 첫 등재된 이후 경주역사유적지구(2000년), 한국의역사마을-하회와 양동(2010년), 산사-한국의 산지승원(2018)에 이어 5번째 쾌거다.
한편, ‘한국의 서원’은 지난 2015년 세계유산 등재를 신청했으나 이코모스(ICOMOS)의 심사 결과 ‘반려(defer)’판정에 따라 2016년 4월 자진해서 등재신청을 철회한 바 있다. 이후 2년 간 관계전문가의 자문을 받아 유산구역을 재조정하고 9개 서원의 대표성과 연계성을 강조하는 등 대폭적인 보완을 거쳐 이번 제43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최종적으로 등재가 결정되었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이번 등재 결정은 300만 도민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쾌거이며, 등재를 위해 노력하신 관계자 여러분의 노고가 있었기에 가능한 결과였다”며, “이번 세계유산 등재를 통해 선조가 물려주신 문화유산의 가치를 전 세계인이 함께 공유하는 기회로 삼고, 세계유산을 최다 보유한 광역지자체의 위상에 걸 맞는 체계적인 보존관리 시스템 구축은 물론 타 지역과 연계한 교육의 장으로 활용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9개 서원 현황
서원별
| 지정종별
| 소재지
| 창건연대
| 배향인물
| 유산가치
|
소수서원
| 사적 제55호
(1963.1.21)
| 영주시 순흥면
| 1543년
| 안 향
안 축
안 보
주세붕
| ∙최초의 서원
∙최초의 사액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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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산서원
| 사적 제154호
(1967.3.8)
| 경주시
안강읍
| 1572년
| 이언적
| ∙출판·장서 역할 정립
|
도산서원
| 사적 제170호
(1969.5.28)
| 안동시
도산면
| 1574년
| 이 황
조 목
| ∙학문·학파의 전형
|
병산서원
| 사적 제260호
(1978.3.31)
| 안동시
풍천면
| 1614년
| 류성룡
류 진
| ∙사림 공론장으로 활동
(ex.만인소)
|
도동서원
| 사적 제488호
(2007.10.5)
| 대구시
달성군
| 1605년
| 김굉필
| ∙교육방식 양상 입증
|
남계서원
| 사적 제499호
(2009.5.26)
| 경남도
함양군
| 1552년
| 정여창
강 익
정 온
| ∙두 번째 건립 서원
∙지역사림이 설립한
최초사례
|
필암서원
| 사적 제242호
(1975.4.23)
| 전남도
장성군
| 1590년
| 김인후
| ∙서남부 확산과정 입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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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성서원
| 사적 제166호
(1968.12.19)
| 전북도
정읍시
| 1615년
| 최치원
신 잠
| ∙성리학의 향촌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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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암서원
| 사적 제383호
(1993.10.18)
| 충남도
논산시
| 1634년
| 김장생
김 집
송준길
송시열
| ∙예학의 완성 거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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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별 상세 설명
소수서원은 주세붕(1499-1554)의 주도하에, 지역 사림이 함께 건립하였다. 소수서원은 서원 교육 및 제향과 관련된 운영 규정을 최초로 세웠다. 교육에 대한 운영 규정은 강의 횟수, 평가 방식, 그리고 입학과 관련된 사항들이다. 제향 관련 규정은 제향의 횟수, 절차, 참여자의 역할 등과 관련된 사항들이다. 소수서원에서 제정한 교육 관련 규정들은 이후 건립되는 서원들의 교육 규정들에 영향을 끼쳤다. 소수서원은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제향의례의 전통을 지니고 있고 서원제도의 정착과 발전과정을 상징하는 기록문화 자료들을 보존하고 있다.
소수서원의 주요 제향인물은 안향(1243-1306)이다. 안향은 13세기말 한국 사회에 최초로 성리학을 원나라(1260-1368)에서 도입한 인물로서 한국 성리학의 기원이 되는 인물이다. 안향은 이 지역 출신으로 현재의 소수서원의 입지는 안향이 생전에 공부했던 장소였다. 이후 안축(1287-1348), 안보(1302-1357), 주세붕이 추가로 배향되었다. 안축과 안보는 안향의 후손이자 지역 출신으로서 성리학 이해가 높은 성리학자였다. 주세붕은 풍기군수로 재임하면서 소수서원의 건립을 주도한 인물이다. 제향인물을 공자가 아닌 지역의 선현으로 선정하는 서원의 전통은 소수서원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옥산서원은 경주지역 사림의 주도로 건립된 서원으로 경상북도 동부지역 사림의 근거지였다. 옥산서원은 출판 및 장서의 중심기구로서의 서원 기능을 증명한다. 옥산서원에는 제향자의 문집, 성리학 서적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와 연관된 다양한 서적들이 출판, 소장되어 있다.
옥산서원은 입학규정, 교육 평가 내용과 관련된 고문서가 소장되어 있어 서원의 교육 방식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옥산서원에는 서원의 교육제도와 관련하여 원생의 선발과 평가에 대한 자료가 잘 보존되어 있다. 원생 선발관련 자료는 천거 유생의 명단과 천거자가 기재되어 있는데, 봄․가을과 각종 모임이 있을 때마다 천거하였다. 평가 자료인 강지(講紙)는 원생 시험의 성적 기록부로서 시험과목에 따라 성적을 4등급으로 구분하고 성적 아래에 평가자의 서명이 되어 있다.
제향인물 이언적(1491-1553)은 한국 성리학 발전 단계에서 존재론․우주론 등의 성리학 이론을 탐구하고 이에 대한 토론을 주도하였던 인물이다. 또한 16세기 중앙정계에 진출하여 성리학에 기반을 둔 정치적 견해를 제시하기도 하였고, 왕실의 성리학 교사로서 활동하였다. 이언적은 관료․학자로서 활동했던 사림의 한 유형을 보여준다.
옥산서원은 경상도 동부의 서원과 사림의 공론을 주도하며 발전해 갔다. 지역의 다양한 이슈에 관해 옥산서원에 모여 다양한 주제들을 논의하였다. 옥산서원의 사림은 19세기 말 한국의 근대화 과정에서 성리학 전통을 고수하고 정부의 일방적인 근대화 정책에 반발하여 지역 사림들의 연명상소인 만인소를 주도하였다. 8,849명의 사림이 서명한 이 자료는 현재 옥산서원에 소장되어 있다.
도산서원의 주향인물은 이황(1501-1570)이다. 이황은 안동 출신으로 중국에서 전래된 성리학이 한국에서 정착되고 체계화하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한 인물이다.
이황은 16세기 중반 한국의 성리학 지성계를 주도하였고, 그의 성리학 연구를 기점으로 한국의 성리학이 이론적․체계적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이황의 성리학 연구 및 저술들은 한국의 많은 사림들의 지침서가 되었고, 17세기에는 일본에 전래되어 영양을 끼쳤다. 이황의 주도로 16세기 중후반 서원 건립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고, 그에 의해 서원의 교육 및 제향의례와 관련된 사항들이 정리되었다. 한국 성리학의 정착과 서원 보급에 있어 이황은 가장 상징되는 인물이다. 1614년에는 이황의 제자였던 조목(1524-1606)도 함께 종향되었다.
병산서원은 류성룡의 제자, 후손, 그리고 안동 지역 사림에 의해 건립되었다. 서원은 교육기관에서 출발했지만, 교육적 기능 뿐만 아니라 점차 사림 활동의 중심지로 기능하였다. 이러한 모습의 한 측면을 병산서원에서 볼 수 있는데, 병산서원은 만인소를 조선시대에 최초로 작성하는 등 공론장으로서 서원 역할을 적극적으로 실천한 곳이다. 병산서원 목판은 2015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한국의 유교책판”의 일부로 포함되어 있다.
병산서원의 주향인물은 류성룡(1542-1607)이다. 류성룡은 16세기 후반 영의정․도체찰사로 임진왜란을 수행한 인물이다. 사림이 중앙 정계에 최고위직에 진출하였다는 사실은 사림이 지역을 넘어서 주요 정책과정의 핵심적인 위치로 발돋움한 관료형 사림의 유형을 나타낸다. 류성룡은 임진왜란 과정에서『징비록』,『군문등록』등 여러 저술들을 남겼는데, 병산서원에서는 이를 출판 간행하였다. 류성룡의 저술은 일본에까지 보급되어 일본의 지식인들에 의해 읽혀졌다. 1662년에는 류성룡의 아들이자 그의 학문을 계승한 류진(1582-1635)을 종향하였다.
병산서원은 한국 서원의 발전 과정에서 서원의 기능이 교육에서 공론장으로 확장된 사례에 속한다. 병산서원은 한국 최초로 수천명이 연명한 유소를 올린 서원이며 지역의 공론을 형성하고 종합, 산출하는 공론장의 기능을 적극적으로 수행하였다. 병산서원에 소장된 다양한 고문서들은 병산서원이 지역의 공론을 수합하고 조정해 나간 전반적인 사항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