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그래프몽타주 No.-6 지하철
권기덕
지하철문이 닫히고 사람들 머리가 잘린다
발목이 잘린다 끌려온 길들이 잘린다
출입문 비상콕에
철썩,
흔들리는 손잡이에
철썩,
맞은편 할머니마스크에도
철썩,
철썩, 철썩, 그림자가 달라붙는다
버킷백과 장갑, 스마트폰이 뒤바뀌고
애인의 문자메시지는 낯선 남자의 귀에 걸린다
당신 하이힐은 점퍼에 어울리고
당신 목도리는 열차바닥에 더 적합하다
있어야 할 곳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는 지하철을 타고
지하철은 우리를 오려붙이기 위해 땅속을 달린다
철썩,
당신의 상상은 그의 온몸을 조각내고 있군요
하지만, 이곳은 평화로운 흑백사진
당신은 나에게 말한 적 없고
당신은 나를 살인한 적이 없어요
누군가를 그리워해본 사람은
철썩,
열차의 창문에서 내 표정은 더 선명해지고
바람은 거꾸로 불어온다
철썩,
당신은 당신이 아니라 작은 바람이고
당신의 무릎 사이 누군가의 신발이 포개질 때
숨바꼭질놀이는 다시 시작된다
숨어도 찾지 않는
철썩,
나를 찾을 수 있겠어요?
“시에 대한 기존의 주류적 관점은 시-세계는 감각 현실의 언어적 반영이라는 시각이다. 이는 현실 체험이 선행하고, 시 언어가 이를 부조(浮彫)하고 담아내는 그릇이라는 점, 물론 여기에서 체험된 현실은 사람들이 공유하는 공통 감각,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외적 현실을 구성하는 감각들의 세계라는 점이다. 생경한 목소리에 기이한 상상력과 상징이 얹어지더라도 시-세계는 감각 현실이 깃드는 처소(處所)인 셈이다. 시적 주체에 의해 ‘경험된 현실이 재구성되는 장소로서의 세계’는 시에 대한 가장 광범위하면서도 오래된 통념이다. 우리 시대 ‘젊은 시’들은 이 통념에 전면적인 균열을 내었고, 시단의 주류는 전복되었다. 오늘날 우리 시단은 더 이상 해체 혹은 실험 등의 수사로 특정한 시들을 분류하지 않는다. 이상(李箱), 김춘수, 이승훈 등으로 이어지던 한국 시의 한 계보는 오늘의 우리 시의 지형을 구성하는데 썩 유효한 방법적 척도라고 보기 어렵다. 종전의 관점에서 새롭고 실험적인 성격이 더 이상 일부 시인들의 특징은 아니라는 점, 이는 시적 주류의 내파(內波)이자 해체이면서 자연-서정으로 대표되는 기성 시들을 추문화(醜聞化)하는 효과를 발휘하였다. ”(김문주,『저녁의 詩』p115)
새로운 관점에서 언어를 집요한 지적놀이로 시도하는, 권기덕(1975∼, 경북 예천 출생)의 시「포토그래프몽타주 No.-6 지하철」(중앙북스, 2015, 시집『P』)는 감각적이고 시니컬하다. 미술 전공자인 그는 현상의 이미지를 시 행간에 오려 붙여 화면처럼 펼치고 있다. 이런 시적 모호성은 도리어 현실을 또렷하게 보여 주며, 추상화처럼 해독이 불가능한 세계를 가능태로 연결한다. “지하철문이 닫히고 사람들 머리가 잘리”는 순간 이미지는 영화의 기법을 오버랩 시킨다. 특징적인 몇 가지 장면들을 분할해서 행과 행, 연과 연을 유기적으로 결합한다. 또한 이 시는 독특한 시집 제목『P』로 인해 세간에 화제가 되었다.『P』는 일반적으로 사람의 ‘피’일 수도 있고, ‘파킹’의 의미도 된다. 혓바닥을 상징하기도 하고, 인칭으로서의 P, 포토몽타주기법의 P로도 해석할 수 있다. 다분히 시인의 다의적인 의도성이 깔려 있다. 이런 것을 시법으론 ‘겹 이미지’라고 한다. 실제로 그는 많은 시에서 ‘중의적이고 중첩된 겹의 이미지’를 시도하고 있다. 시인 이규리는 그의 시를 평가하면서 ‘이거나 아니거나, 있거나 없는 모두이면서 아무도 아닌 것으로 존재하는 것.’이라고, 아주 적확하게 표현한 바 있다.
미술과 시의 접목은 오래 전부터 현대시의 한 전경이다. 이상의「오감도」는 ‘건축’과 초현실주의를 믹스한 것이며, 이하석의「부서진 활주로」는 팝 아트와 하이퍼 리얼리즘을 시 속에 접목했다. 권기덕 역시 사물 속에 깃든 ‘미적 인식’을, 시인의 내적 감각과 버무려 이미지화한다. 그것은 차츰 정신세계 또는 삶의 어떤 특이점에 대한 관심으로 확장 변용된다. 그의 시는 결과적으로 시어의 형태로 나왔지만, 어떨 때는 그림을 ‘언어’로 그린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하여, 그가 본 지하의 풍경은 “발목이 잘린다 끌려온 길들이 잘린다 / 출입문 비상콕에 /철썩, / 흔들리는 손잡이에 / 철썩, / 맞은편 할머니마스크에도 / 철썩, / 철썩, 철썩, 그림자가 달라붙는다”. 파편화된 사물의 이미지들은 서로 몸을 바꿔가며, 끝내 “버킷백과 장갑”이 스마트폰으로 뒤바뀌는 현상이 일어난다. 그의 시적 상상력은 여기에서 머물지 않는다. “지하철은 우리를 오려붙이기 위해 땅속을” 달리기도 하고, “당신이 당신이 아니라 작은 바람”으로 환치되기도 한다. 결국 시인은 느낌으로 어떤 순간을 복원하는 몽타주 기법을 통해, 현대사회 인간들을 향해, 잃어버린 ‘나의 길 찾기’를 역설로 되묻고 있다.
1962년 경북 영덕 출생. 대구에서 성장.
1994년『문학세계』‘시 부문’ 신인상 수상으로 등단
1997년 제 1시집『시가 걸리는 저녁 풍경』출간
2002년 제 2시집『구멍』출간
2004년 제 3시집『처녀와 바다』출간
2007년 동시집『우리 나라 연못 속 친구들』출간
2011년 시 에세이집『시, 낭송의 옷을 입다』출간
2014년 평론집『시에 미치다』출간
2015년 대구예술상 수상
2016년 제 4시집『깍지』출간
2017년 매일신문 신춘문예동시당선
2017년 동시집『태양 셰프』출간
2018년 시 대담 평론집『저녁의 詩』편저
2018년 대구문학상, 최치원문학상 대상 수상.
한국시인협회, 대구시인협회 부회장. 대구문인협회시분과위원장.『텃밭시인학교』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