띠풀은 귀를 허공에 넣고
비가 비 소리 몰고 오는 짓을 다 듣고 있었다
그 아랫도리 벌쭘한 새 무덤 위에서
참 희한도 하지
비가 비 소리 몰고 가는 짓을 다 알고나 있었다는 듯
띠풀은 귓속 물이 차
자꾸 자꾸 왼쪽 귀를 털고 있었다
시의 길(Poem Road) ∥
〈현실공간이 문학공간에 들어오면, 현실은 곧 그 작가의 체험, 상상력에 의해 변형되고 굴절되어 새로운 이미지가 탄생한다. 이 새로운 이미지야말로 사실을 넘어선 진실의 세계에 닿는 다리이다. 다시 말해,「시의 언어는 우리를 꿈꾸게 해 주고, 만나게 해 주고, 나아가서는 감추어졌거나 망각되었던 삶의 모습들을 드러내 줌으로써, 우리에게 깨어남의 기쁨을 되찾게 해 주는 것이다. 하여, 시의 언어는 되찾아진 현실, 다시 태어난 현실이며, 또한 우리를 다시 태어나게 하는 현실이 아닐까〉(이성복)
우연히 내가 그 숲 속의 무덤 위에서 띠풀을 발견한 것은, 빗물이 떨어지는 여름 한낮이었다. 여러 개의 빗방울은 내 머리에 떨어져 코와 뺨을 타고 등줄기에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그때 내 시선에 포획된 것은 무덤 위의 띠풀이었다. 놀랍게도 띠풀은 귀를 허공에 넣고 비 소리를 다 듣고 있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 아랫도리 벌쭉한 새 무덤 위에서 띠풀은, 흔들리는 바람 속에서 귓속 물이 찬 듯 자꾸자꾸 귀를 털고 있었다. 그것은 아마도 끊임없이 무덤을 적시고자 하는 빗물의 의지와, 그것을 떨구려는 띠풀의, 귀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에서 온 ‘침묵의 역설’이였는지 모른다. 마치 내가 이 숲 속의 뻐꾸기 울음 속에서, 시의 흐느낌을 찾아내었듯, 시「귓속 물이 차」(4시집. 그루, 2016)는, 소리는 소리 아닌 몸으로 이루어져 있어 더욱 비극적인지 모른다.
요즘 나의 일은, 동네 뒷산인 야트막한 무학산(舞鶴山, 203m)산 숲속에서 고요히 눈을 감고 참나무 둥치에 앉아 다시 뻐꾸기 소리를 듣는 일이다. 그 소리는 언제나 존재의 깊은 심연에 닿는다. 수억 겁 전에 이미 내 몸을 빌려 알을 낳아 살고 있는 그 탁란의 슬픈 뻐꾸기가 숲 속에서 날아와 내 시마(詩魔)를 흔든다. 귀 바퀴를 타고 감겨오는 청각이 아니라 마음 속 저 바다에서 들여오는, 먼 옛날 잃어버린 그 아비와 어미의 한숨 같은 뻐꾸기 울음소리. 뻐~꾹 뻐~꾹, 삐이 삐 삐. 내가 느낀 그 숲의 바람 소리에는 언제나 뻐꾸기의 정령이 소곤거리고 있다. 그것은 어쩌면 시의 혈관에 흐르는 애내(欸乃)같은 흐느낌 같기도 하고, 한없이 일렁대는 몸 없는 것들의 살 부비는 소리 같기도 하고, 흔들리는 사물의 몸짓이 흘리고 간 사라진 문장의 여운 같기도 하다. 왜 나는 이 산 속의 뻐꾸기 소리에 홀려버렸는지 알 길이 없지만, 안개비 내리는 새벽 덤불 딸기 새로 나를 쳐다보던 고라니의 눈빛 곁에서 들었던 그 젖은 뻐꾸기 소리.
내게 있어 숲은 신 지핀 영감의 장소이다. 나는 날마다 숲속을 돌아다니며 초록 시(詩)를 떠먹는다. 아니 숨겨둔 산벚나무의 그 분홍 꽃향기를 양껏 퍼먹는다. 영감이 떠오를 때마다 소나무를 꼭 껴안고 그 둥치에 귀를 댄다. 될수록 나는 세상 밖의 잡사는 밀치고, 그 허공 속에 손가락을 넣고 노는 청단풍 어린가지들과 비밀을 주고받는다. 숲은 그 자체가 음악이다. 아니, 숲 그 자체가 커다란 하나의 악기이다. 산이 지휘자라면 나무들은 온갖 소리들의 연주자이다. 나무가 만든 초록 밥을 내가 먹고, 나의 숨을 나무가 되먹는 인연법은 놀랍다. 나는 숲 속 명상을 통해, 자연은 나무와 사람을 빌어 독창적 방식으로 물을 저장하고 이동한다는 놀라운 지혜를 배웠다. 식물은 그 자체가 낱개의 물통이며, 동물 역시 움직이는 물의 저장고이다. 나무 잎이 허공을 통해 물길을 낸다면, 사람은 숨과 피부와 대소변을 통해 몸 속 물을 순환시킨다.
틈만 나면 나는 느리게 아주 느리게 휘파람을 불며, 이 숲길을 보고 만지며 나만의 시상(詩想)을 가다듬곤 한다. 딱따구리가 참나무를 쪼으며 내는 그 아름다운 공명의 메아리는 시의 보고(寶庫)이다. ‘새란 실체보다, 새소리가 어쩌면 시의 본질이 아닐까’라는 엉뚱한 상상으로 웃곤 한다. 바람에 일렁이는 숲의 그림자는 그 자체가 은유이자 상징이며 기호이다. 내가 걷는 그 산길 곁의 무덤은, 무더기로 핀 황매를 통해 죽은 자의 적막을 드러낸다. 산까치와 보았던 그 아침 때죽나무는, 흰 종모양의 꽃 송아리를 달고 수백 개의 종소리가 났다. 온 산의 관능을 일깨우는 오월의 찔레 향은 죽은 요부(妖婦)의 매혹이다. 나는 무학산 그 좁다랗게 이어진 오솔길을 ‘시의 길(Poem Road)'이라고 부른다. 떡깔나무 낙엽을 뚫고 올라온 춘란의 노랑 꽃대를 봄날의 첫 행으로 읽었다. 어쩌다 저녁 무렵 나뭇잎 사이로 얼비치던 앞산 너머의 붉은 저녁놀은, 시 아닌 것으로 시가 씌어 진 하늘의 언어였다. 하여, 숲은 시의 몸과 신(神)을 기르는 묘처이다. 나에게 무학은 시의 묘오한 이치를 깨닫게 하고, 시심을 일깨우는 더없는 성소였던 셈이다.
1962년 경북 영덕 구계항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자랐다. 1994년『문학세계』로 등단, 2017년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동시, 2020년『문장21』에 평론이 당선되었다. 시집『시가 걸리는 저녁 풍경』,『구멍』,『처녀와 바다』,『깍지』, 시선집『고흐의 시』, 시 에세이집『시, 낭송의 옷을 입다』, 평론집『시에 미치다』, 동시집『우리나라 연못 속 친구들』,『태양 셰프』출간하였으며, 시평론 대담집『저녁의 詩』를 편저했다. 대구예술상(2015), 고운 최치원문학상 대상(2018), 대구문학상(2018), 영남문학상 수상(2020)을 수상했다. 대구시인협회부회장 역임, 대구문인협회 이사, 한국시인협회원, 대구아동문학회원,『텃밭시인학교』대표로 활동하고 있으며, 계간『일연문학』주간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