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흐트러질 때마다
긴 머리를
얼레빗과 참빗으로
곱게 빗어 올려
반짝반짝 윤이 나는
은비녀 바르게 꽂아
흐트러진 마음을
바르게 잡아 본다
한평생 함께하며
외로울 때 만져 보고
기쁠 때도 만져 보고
한 몸이 되었다
뽑히고 희어진 머릴망정
모른 채 버릴 수 없어
안간힘을 써 가며
단정히 꽂혀 있다
옥색 모시 치마 흰 적삼에
쪽진머리 곱게 빗으시고
한평생 조심스레 걸으시던 어머니
정춘자의 시집『당신 별은 어디 있나요』(2021, 그루)는, 근래 보기 힘든 서정시의 진정성이 있다. 특히 표제시「당신 별은 어디 있나요」를 읊조리고 있으면, 사랑하는 남편과의 사별의 슬픔이 곡진하다. 이런 체념과 사무친 정은 한국인의 한恨의 정서와 맞물려 감동을 자아낸다. 밤하늘 별이 된 남편을 애절하게 불러내는 ‘초혼 의식’은, 이승과 저승의 거리만큼 아득하다.「놋그릇」은 놋그릇에 부딪혀 울려 나오는 먼 추억 속의 메아리가, 고향과 식구들의 따뜻한 정서를 불러일으킨다. 겨울 아궁이 너머로 풍겨오는, 그 구수한「백설기」냄새는, 전통의 향수이자 공감각적이다.
「은비녀」는 얼레빗과 참빗으로 곱게 머리카락을 빗어 올린 딸과 어머니의 환영이 겹쳐 곱기도 하다. 서정시는 사람 살이에서 없어서는 안 될 귀한 복주머니와 같다. 그녀의 서정시 전반을 관통하고 있는 따뜻한 정서는 사모곡이다. 어머니에 대한 곡진한 사랑과 모성에 대한 그리움은 실로 놀랍다. 언제나 그녀에게 어머니는 앞마당처럼 늘 푸근한 존재이다. “새벽마다 장독대 앞에서 / 자식들의 무병장수를 빌어”(「백설기」) 준 분이다. 떠올리기만 해도 좋은 어머니는 “따뜻한 젖가슴”을 가진 분이다. 사모곡은 고대와 중세, 근대와 현대에까지도 가장 많이 노래 되고 있으며, 서정시의 중요한 본류이다. 어머니의 품은 인간의 첫 대면 공간이자 시간이며, 촉감과 냄새를 통해 무의식에 각인 된다. 하여, 외롭거나 쓸쓸하면 저도 모르게 ‘엄마’하고 부르게 된다. 모성 의식은 전통 정신과 고향 정서에 충첩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이런 동일시 현상은 수많은 예술가와 시인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옥잠화의 꽃봉오리는 마치 여인의 옥비녀(은비녀)를 닮았다. 시「은비녀」는“한평생 조심스레 걸으시던 어머니”에 대한 시인의 고운 기억이다. 누구에게나 어머니는 그리움의 이쪽과 사랑의 저쪽 사이에 놓인 성소聖所이다. 근대의 여인들은 “마음이 흐트러질 때마다 / 긴 머리를 / 얼레빗과 참빗으로 / 곱게 빗어 올려” 자신을 가다듬곤 했다. “반짝반짝 윤이 나는 / 은비녀”를 꽂은 그녀들의 한복은, 그 자체가 한국의 미였다. 보름달이 환히 비친 골목으로 어릴 때 부잣집 여인이 지나가면, 한복 저고리의 고름이나 치마허리의 고운 노리개는, 참으로 아름답게 빛났다. 훗날 그것이 외로운 여인들의 소회를 푸는 한 방법임을 알기까지는, 한참이나 철이 들어야 했다. 때로 노리개는 여인과 “한 몸”이 되어 기쁨이 되기도 한다. 하여 시인은「은비녀」를 통해‘딸’과“어머니”의 두 대代에 걸친, 여인만이 누릴 수 있는 고고한 품을 격조 높게 노래하고 있다.
서정시는 물결의 주름과 같다. 젊은 날의 피부는 개울 물소리가 나고, 늙음의 주름은 마른 바닥 갈라지는 소리가 난다. 서정시는 숲속의 안개처럼 모호한 이미지들로 가득하다. 감성의 빛깔과 사물의 혼령이 만나 소곤대는, 말의 정령이다. 이번 정춘자 시집『당신 별은 어디 있나요』에서, 우리는 시인의 예민한 언어의 촉수를 느낀다. 사별의 아픔을 느낀 자만이 부를 수 있는 놀라운 비가悲歌를 만난다. 때로는 어머니의 높고 깊고 숭고한 사랑을, 때로는 아버지의 크고 넓고 푸근한 가슴의 시를 만난다. 여행에서 만난 시는, 온 세상이 아름다움이요, 살 만한 곳임을 보여준다. 불교적 사상에 경도된 시편들에선, 온 세상이 불경이며, 법당임을 인식하기도 한다. 궁극적으로 그녀의 시집은‘밝음’과‘어둠’의 미학을 추구한다.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 사이에서 그녀의 서정은 서성거린다. 때로는 질문의 방식으로, 때로는 비탄의 방식으로, 이 세계와 대응한다. 그녀의 시적 고뇌는 슬프면서 아름답다. 언어에 영혼을 실어‘달빛에게 건네는 말’이다. 묵은 언어의 맛은 전통적이면서도 세밀하다. 아픈 자만이 흐느끼는 빛과 어둠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그런 측면에서 정춘자의 시는 개인적 서정을 지나 보편적 서정으로 한 발짝 나아간 시집으로 규정된다.
1962년 경북 영덕 구계항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자랐다. 1994년『문학세계』로 등단, 2017년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동시, 2020년『문장21』에 평론이 당선되었다. 시집『시가 걸리는 저녁 풍경』,『구멍』,『처녀와 바다』,『깍지』, 시선집『고흐의 시』, 시 에세이집『시, 낭송의 옷을 입다』, 평론집『시에 미치다』, 동시집『우리 나라 연못 속 친구들』,『태양 셰프』출간하였으며, 시평론 대담집『저녁의 詩』를 편저했다. 대구예술상(2015), 고운 최치원문학상 대상(2018), 대구문학상(2018), 영남문학상 수상(2020)을 수상했다. 대구시인협회부회장 역임, 대구문인협회 이사, 한국시인협회원, 대구아동문학회원,『텃밭시인학교』대표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