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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4월 10일 승무원 129명이 탑승한 미 핵잠수함 드레셔호가 대서양에서 침몰했다. 이 사고는 평화시에 발생한 최악의 해군참사였다. 침몰의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인혁당(인민혁명당) 재건위 사건 관련자 8명은 소위 전국민주청년학생연맹(민청학련)의 배후 세력이란 이유로 1974년 체포되어 동년 6월 15일 비상군법회의 1심 재판을 거쳐, 1974년 9월 비상고등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사형은 1975년 4월 8일 대법원이 상고 기각 판결을 내린 지 만 19시간 만인 이날 새벽 집행됐다.
1970년 4월 8일 오전 6시 20분, 서울 마포구 창전동에 위치한 와우시민아파트 한 동(棟)이 폭삭 주저앉는 대형 참사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아직 새벽잠이 덜 깬 주민 70여 명 중 33명이 압사하고 수십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9년 4월 7일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정관계 로비의혹에 자신의 친인척과 측근들이 연루된 데 대해 국민에게 사과했다. 노 전 대통령은 이날 자신의 공식 홈페이지에 대국민 사과문을 올렸다.
이탈리아 중부 산간지역인 아브루초주(州)에서 2009년 4월 6일 강진이 발생해 주도 라킬라와 그 주변 20여개 도시, 마을에서 어린이 16명을 포함해 모두 272명이 숨지고 1천200여명이 부상당했다.
북한이 발사한 로켓의 2단 추진체의 낙하지점이 애초 예고된 무수단 발사장 기점 3천600㎞에는 못미친 것으로 알려졌지만 1998년의 대포동 1호보다 더 멀리 낙하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ICBM 능력을 갖췄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1951년 4월 5일, 연방재판소는 범행을 계속 부인하는 로젠버그 부부에게 그린글래스의 증인만을 거의 유일한 근거로 삼아 사형선고를 내렸다.
마구 얻어맞은 군중은 차례차례 쓰러져, 잠시 후 상황이 종료됐을 때 광장 돌바닥 위에는 엄청난 양의 피가 낭자했다. 이것이 중국 전역과 전 세계에 큰 충격을 던져준 '천안문 사태'였다.
불은 4일 밤 11시50분쯤 강원도 양양군 양양읍 파일리와 강현면 물감리 구간도로 옆 야산에서 시작, 강풍을 타고 동쪽으로 계속 번져 150㏊의 임야와 민가 38채를 태웠다. 이 불로 12개 마을 800여명의 주민과 낙산비치호텔에 투숙한 관광객 등 90여명도 대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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