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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다섯째의 핏줄-1


남원환 작가- 대구출생 .대구성광고 졸업 .경북대 독문과 졸업  <주요저서>마음 중 단편 .대불(시집) .김대중 .한국전쟁 언저리 .금호강의 영혼(시집)






#매주 토요일 연재  









지하국가2       

9. 다섯째의 핏줄-1





허블이라는 곳에는 망원경이 많다. 멀리 본다는 것이다. 도대체 얼마나 멀리 본다는 것인가? 만 년을 앞서 본다는 것이다. 그래서 무슨 좋은 일이 생기고 무슨 행복이 있는 것일까? 일 년도 예측을 못하는 실제 상황에서 말이다. 현실의 능력은 그렇지만 만 년을 보는 능력을 배양하기 위해 공부를 하면 길이 열린다는 것을 염두에 두자라는 것이다. 현실학도 안 되는 것을 미래학을 도입하자는 것인데 다 안 되어도 할 수 없고 다 되어도 할 수 없지만 미래학을 해보자는 것이다. 생소한 천문학이 우주학이 가까이 오면 거부나 하지 말자. 허블에는 천 년을 사는 사람들이 미래학, 천문학, 우주학을 싫어하지도 않고 긴긴 인생에서 십분의 일인 백 년을 충분히 공부할 수 있는 넉넉한 시간을 가진 관계로 최소한의 능력이 백 년씩이나 공부한 사람들이다. 전문가는 팔백 년을 공부했을 것이고 비전문가가 백 년씩 연구한 수준이다. 허블이 당연히 존경받는 곳이다. 허블이 없으면 도시가 성립되지 않는다. 하루 24시간 중에 현실을 보는 시간이 5시간이면 멀리나 미래나 과거를 보는 시간도 5시간이나 되니 도시 사람들이 현재를 살고 있지만 현재에 머무르지 않고 시공간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머릿속이 복잡한 나날이다. 은하계의 뉴스를 열심히 이야기하다가 구석기시대를 다녀오고 점심때가 되면 현실의 식사시간이라 밥을 먹으면서 허블 도시를 느끼게 된다. 허블에서는 시간과 공간에 대해 제한을 심하게 가하지 않는 고로 붙박이로 정주하는 개념이 대단히 희박하다. 인간이 움직이는 동물인데 그 동물에 동물을 더한 동동물인 셈이다. 동동물(動動物)에다가 생각을 너무 많이 하니 다사고(多思考) 동동물(動動物)이라 할 수 있다. 천 살에 가까운 다사고동동물(多思考動動物)이다. 만 년 후에 보이는 것이 인간의 다사고동동물 형태란 말인가? 어린이가 성장하면서 성인이 되기까지의 행태는 점점 다사고동동물의 방식이 맞다. 노인이 되면 점점 저사고저동물(低思考低動物)의 모습을 보인다. 생각을 적게 하고 덜 움직이는 것이 힘이 모자랄 때는 통하는 방식이다. 자기 한 몸 간수하기 힘이 드는데 기운을 여러 곳에 분산하지도 심하게 낭비할 수도 없다. 천 년을 산다는 것은 힘이 천 년이나 줄지 않고 계속 생각하고 움직여도 된다는 의미이다. 만 년이 보이는 것은 천 년을 넘어 이천 년을 사는 사람의 모습이란 말인가? 백 년을 사는 사람이 이백 년을 살듯, 오십 년을 사는 사람이 백 년을 살듯 말이다. 오십 년을 살던 사람이 백 년을 살게 된다면 이해를 하나 백 년을 살다가 이백 년을 산다면 이해가 쉽지 않다. 천 년이라면 보지도 않고 듣지도 않는다. 백이십 년 이라면 보기도 하려하고 듣기도 하려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나의 눈에 나의 귀에 익어야 하기 때문이다. 나의 눈과 귀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일의 진행이 각 개인의 수준에서는 끝이지만 허블도시에서는 그렇지가 않다. 허블시는 열린 공간이다. 훤히 보이고 막히지 않음이다. 투명하게 미래와 과거가 보이니 꼼수는 통하지 못한다. 너무 세밀하게 보이는 것이 부담스럽기도 하다. 감추고 싶은 부분도 엄연히 존재하는 인간이기에 고민이 따르는 것이 정상이나 허블시의 성립자체가 안 보이는 것을 보려는 것에서 시작이 되었으니 당연히 보이는 것은 문제도 삼지 않고 출발했음이다. 천문학과 사회심리학이나 인간의 내면이 같을 순 없어도 본다는 공개의 개념이 내재해 있기 때문이다. 허블시의 각 개인의 일생사도 900년이면 다 보려면 적은 분량이 아니다. 천 년이나 되는 개인의 일생을 되돌려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지만 중요한 시기를 잡아 특징적인 것을 보는 것은 가능하다. 태어나는 신생아 각 개인의 천 년의 미래를 다 점치기도 어렵지만 미래를 공개할 수도 없음이다. 미래가 공개되면 살 필요가 없다. 다 아는 미래를 어떻게 살 수가 있으랴! 필경 다 알고 있다하더라도 미래는 공란으로 비워둘 수밖에 없다. 인간이기에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고 싶어 한다. 태어나서 간난 아기 때 병으로 죽는 미래를 알고 있다면 슬퍼서 살 수가 없다. 천 년 중에 백 년이 지나면 교통사고로 죽을 운명임을 알고 살게 된다면 정상적인 인간의 삶을 살 수 없을 것이다. 안 보이는 것을 억지로 보려고 해도 볼 수 없게 규정되고 그렇게 되어야 하는 인간적인 나약함이나 인간의 한계성이 숨어 있다. 천 년이 지나면 당연히 죽는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지만 덮어두고 지내고 싶은 인간이다. 태어나는 순간은 차례대로 태어났지만 죽는 시기는 서로 달라 희비가 교차되고 모르는 것이 약이기 때문이다. 사회전체로는 죽는 시기나 성향을 분명히 예측이 가능하나 개인에게는 적용을 하지 않는 모순적인 방법으로 일생을 유지하는 인간이며 가장 발달한 허블시도 특별한 방법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예측 가능한 통계치를 보면 올해는 무슨 병으로 사고로 몇 명이 몇 살 정도의 사람이 죽을 것이란 것은 분명히 알 수 있지만 각 개인에게 꼭 집어서 말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천 년이나 사는 사람이 자기 판단능력만으로도 알 수 있지만 일부러 모른 체한다는 식이다. 염라대왕은 허블시 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의 죽는 시간과 형태를 다 알고 있다. 안 보이는 것이 보인다는 것은 인간이 염라대왕이 되는 것인데 그 염라대왕의 길은 싫고 인정하지 않으려는 본성이 있다. 있는 염라대왕을 부정하는 것이다. 있는 것을 없다고 여기는 것이다. 없는 것을 있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염라대왕을 없게 생각하고 없이 사는 것을 적용하려는 인간이다. 불행과 죽음을 적극적으로 방어하고 피하려는 인간이다. 죽는 것을 보지 않으려는 역설이 있다. 사는 것만 보아도 짧은 인생에서 굳이 꺼림칙한 면을 밝히고 싶어 하지 않는다. 염라대왕이 각 개인에게 사망을 알리는 명부가 만천하에 보이게 되는 것이 당연한 것이나 그 당연한 것을 배배 꼬이게 만들어 혼란을 주려고 인간은 노력한다. 부질없는 일이지만 그렇게 한다. 태어나자마자 부모나 친지들이 그 아기의 사망명부를 본다면 태어난 의미가 없다. 엉터리라도 장밋빛 미래로 채울 것이다. 우리에게 보이는 것은 각 개인의 천 년 동안 사는 모습이 거짓말로 꾸며진 일생을 보도록 구조화되어진다. 거짓으로 채색되는 미래를 형성하지 않으면 인간은 생존이 불가능하다. 처음부터 인간은 좋게, 밝게, 행복하게 가짜로 설계되어 있는데 그것이 사는 동안에 진짜가 되어 좋게, 밝게, 행복하게 되는 것이다. 미래를 아름답게 장식하여 그 방식대로 살게 되면 아름다운 미래가 되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별 성공가능성이 없는 인생일지라도 미래는 계속 성공적이고 아름답다고 천 년을 밀고 나가면 천 년이 행복으로 차게 되니 처음부터 사실대로 나갈 것이 아니라 아름답게 꾸민 미래를 향해 그렇게 살다보면 인간은 한 단계 나은 인생의 맛과 보람과 행복을 만끽하게 되니 안 보이는 미래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보단 다듬어 꾸미는 역설이 가치가 있다는 주장을 허블시는 하기도 하는 것이다. 허블시에서는 시궁창의 더러운 물에서 연꽃이 피듯이 엉망인 각 개인의 보이는 미래일지라도 전혀 반대의 결과물을 생산해내는 신기한 재주를 피우고 있다. 신기한 재주는 사람이 사람이기를 염원하고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성공하는 씨앗이 숨겨져 있었다. 인간 스스로가 존귀하고자 하는 인간의 깨끗하고 바람직한 것들로 인해 인간이 차지한 대단한 인간의 특징이다. 상황을 개선시키고 바꿀 수 있단 것은 생존의 능력이 앞선다는 증거이다. 정신적인 각성으로 인간을 변화시키는 인간의 놀라운 인간적 힘이다. 코끼리를 부리는 인간의 재주도 대단하다. 새끼 때부터 쇠말뚝에 묶어 멀리 못 움직이도록 세뇌를 시켜 놓으면 다 성숙한 코끼리가 쇠말뚝에 묶여 멀리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다. 실제로는 쇠말뚝을 뽑을 수 있는데 뽑을 수 없다고 성장한 코끼리는 행동하는 것이다. 바보 같지만 그렇다. 인간도 코끼리의 흉내를 낼 순 없고 코끼리와는 반대로 해야 하는 것이다. 뽑을 수 없는 쇠말뚝을 뽑을 수 있다고 거짓으로 억지로 생각하고 자꾸 쇠말뚝을 뽑다보면 코끼리보다도 힘센 존재가 된다고 세뇌하는 것이다. 그래서 성공할 지는 미지수이나 그런 방법으로 한계를 극복하는 인간이기에 허블시에는 인간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동원가능한 모든 방법이 사용될 수 있다. 사람은 코끼리보다 힘이 세어지고 염라대왕의 능력을 되돌려 버리고 신출귀몰한 허블시의 시민이 된다. 각 개인을 천 년 동안이나 신출귀몰하게 되도록 방향을 잡아 그리 나아가면 무한대의 인간 능력을 느껴볼 수 있는 초기의 상태까지도 갈 수 있을 것이다. 동물적인 인간이 인간적인 인간이 되고 그 상태를 뛰어넘어 다른 단계에 진입하고자 한다. 허블시는 그 초입의 단계를 생각하는 곳이기에 인간에 대한 긍정과 애착과 사랑이 남달리 지극한 곳이며 그런 성공의 빌미가 있기도 하다. 인간은 같다고 하는 것에도 마음이 놓이지만 특별하다는 감정도 그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같으면서 특별하다. 일면 모순이며 아닌 것이 인간의 내면에 내재하고 있다. 허블시는 인간의 도시이다. 평범한 진리이다. 그러나 특별하다. 그것으로 생존의 조건을 합리화하여 천 년을 넘어서는 생을 추구하고자 하고자 하는 것이다. ‘보고자 하면 보이고 듣고자 하면 들리는 것’처럼 하고자 하면 그 진척되는 것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 허블시는 행복을 증가시키고 불행을 불행으로 당하지 않고 행복한 것으로 뒤바꾸는 일을 해내는 구조를 받아들이는 시민이 사는 깨어있는 도시이다. 위기를 기회로 반전시키는 것이다. 이순신처럼 악조건을 극복하는 것이다. 관의 도움이 없어도 배를 만들고 관의 탄압으로 늘 핍박 받으면서도 어부와 민간인 예비 병력으로 전쟁을 치려내고 정계에 진출할 것이 아니냐는 감시와 견제를 늘 받고 만들어 놓은 배도 관에서 부숴버려도 굴하지 않고 왜군과 싸워 이긴 경우다. 도고 제독의 러시아 함대를 격파한 것은 이순신에 비하면 관군으로 싸우고 관의 도움을 받고 여러 면에서 이순신보다는 호조건이었다고 도고 제독은 말한다. 허블시는 인간에게 불행을 알게 하는 미래라도 긍정으로 바꾸어 미래가 행복으로 보이도록 만들고 실제화 시키는 일을 늘 하는 곳이기에 그래서 살기 좋은 곳이 된다. ‘웃기 때문에 행복해지는’ 것이다.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니라도 웃다보면 저절로 행복해지는 것이다. 허블시는 웃고 노력하고 상황을 좋게 스스로 바꾸기에 좋은 곳이 되는 것이다. 스스로에게 행복해지는 것이다. 행복은 스스로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 허블시에는 자신의 운명을 개척한 사람이 있다. 총각 장님이다. 900살인데도 장가가 가지 않은 사람이다. 결코 불행한 것은 아니다. 안 보이는 것도 보이고 보이는 것은 당연히 보이는 허블시에서 장님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더욱 괴로운 일이었을 것이나 인공으로 만든 안경으로 인해 큰 불편이 없는 정도이다. 인공 안경으로 모든 정보가 입력되어 뇌에 전달되면 눈이 해내는 능력과 동일한 정도로 파악하여 대처하게끔 설계되고 실제로 사용함으로써 눈의 대체 능력을 완벽에 가깝게 재현했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월등히 발달된 청각과 촉각이 보태짐으로 인해 세상을 보는 눈이 더 정확하고 보통의 사람보다 훨씬 많은 정보를 얻어서 총각 장님 점쟁이 수준이 되었다. 점쟁이가 되고 싶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청각, 촉각, 후각이 월등하니 위험이나 다른 사람이 감지 못하는 것을 알아내니 그렇게 보인 것이다. 시각은 인공으로 정보를 수집하여 뇌가 처리하도록 했으니 대체되는 역할을 했으니 보통 사람보다 더 능력이 뛰어난 상황이 되었기에 그렇다. 인간이 다른 동물보다 형편없는 능력들은 갈고 닦아 더 능가하게 된 것과 같다. 날지 못해 새를 부러워하다 새를 닮은 비행기를 라이트 형제가 만들어 12초 동안 날다가 이제는 진짜 새보다 더 오래, 더 멀리 날 수 있다. 힘이 약하다 보니 활을 총을 만들어 힘센 동물을 제압하게 되었다. 눈도 독수리나 타조보다 밝지 않지만 망원경이니 현미경을 만들어 보완하여 동물을 넘어서고 있다. 장님이 자신의 기본적으로 되는 뛰어난 기능에서 인공시력을 보태니 더 좋은 더 능력 있는 상태가 된 것이다. 그렇지만 장가를 가지 않은 것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총각 장님 점쟁이가 하는 예언 능력은 잘 맞아떨어지니 관심을 가지는 것이다. 거기다가 총각이고, 장님인지라 허블시에서는 특이한 존재이다. 대서인도는 보통의 사람도 장님의 안경을 쓰면 뇌에 시각이 수집하는 정보가 뇌에 전달되니 상당한 정도의 시력의 증가를 가져올 수 있으나 굳이 사용하려 하지 않는다. 보통 사람이 사람의 시력을 가지고 있으면 되는데 타조나 독수리의 시력을 가지면 전쟁이나 비행기 비행의 특수한 경우에는 필요하나 일상생활에서는 늘 사용하던 자신의 시력보다 너무 높아 오히려 불편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과도한 시신경에서 뇌로의 정보 전달로 인해 골머리가 아플 수 있음이다. 음식 속의 미세한 세균이 보인다거나 아름다운 경치가 너무 세밀하게 보여 예전에 보던 아름다움이 전혀 다르게 보인다면 불편해지는 것이다. 총각 장님은 이런 불편을 처음부터 느낄 수 없는 상태에서 사용하니 망원경과 현미경을 동시에 가진 능력에다가 다른 기관의 특수하게 발달된 능력을 합하니 가장 오감이 뛰어난 인간이 아니고 무엇이랴? 총각 장님이 점쟁이가 되는 슈퍼맨이 되는 일이 사실이 된다. 인간이 목에 망원경을 걸고 손에 총을 들고 입에는 로봇에게 명령하는 무엇을 달고 그런 인공물로 약한 자신을 더 강하게 만드는 이치와 다를 것이 없다. 일반인보다 더 능력이 있는 것인데도 일반인은 인정하기가 몹시 어렵다. 객관적인 능력이 장님이 더 우수한데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선입견에 빠져서 틀이 바뀐 것을 거부하는 것이다. 틀을 깨트리고 정확하게 보아야 하는데 수백만 년 지속된 과거의 누적된 사실로 인해 현재 허블시의 전개된 이런 일들을 무시한다. 장님은 장애인이다. 끝까지 이런 태도를 버리지 않는다. 장님의 단계를 벗어나 더 오감이 잘 발달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옛날의 고집을 꺾지 않는다. 받아들이기 어려워도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면 태어날 때부터 장님보다 촉각, 청각, 미각 등등이 일반인들이 뒤진다. 앞선 것은 시각이었으나 그 시각이 일반인보다 더 나은 망원경을, 현미경을 구비한 상황인데 이러 어쩌랴? 역전이 되지 않았나? 그렇다. 역전이 되었다. 거기다가 900살 동안 경험이 축적되어 있음이다. 약자를 우습게보면 절대로 안 된다. 이스라엘이 이천 년이나 나라가 없다가 나라를 만드니 무너지지 않게 할 수 있는 노력은 다 할 것이 아니냐? 노벨상 수상의 60%를 차지한다니 놀랍다. 유대인이나 한국인이 똑같이 교육열이 높으나 한국은 어린이에게 선생님 말씀을 잘 들으라고 하는데 유대인은 어린이에게 선생님에게 질문을 많이 하라고 한다. 듣기만 하고 모르는 것을 질문하지 않으니 모르게 되나 질문을 자꾸 하여 모르는 것을 자꾸 물으니 알게 되는 이 차이가 노벨상의 차이라나? 안 보이는 장님이 더 잘보고 있다. 허블시는 인간이 만든 망원경, 현미경, 장님용 정보수집 안경 등이 다른 세상의 사람으로 만들고 있다. 장님이 더 잘보고, 더 많은 능력을 가진 곳이라는 허블이 과연 이해되는 날이 올까? 그러면 처녀들이 장님에게로 시집을 가려고 안달이 나야 하지 않나? 그런 일이 일상사가 되어야 정상인데 말이다. 어마어마한 시각정보가 뇌에 전달되어 뇌를 통하여 시각을 보완해 오던 총각 장님 점쟁이에게 더 좋은 일이 또 생겼다. 뇌가 자꾸 활성화되어 900년에 걸친 자극이 시신경을 살려내어 눈이 떠지게 되어 일반인의 시력을 회복하고 거기에 더하여 장님용 인공 안경을 통해 시각정보도 들어오니 뇌와 시신경에서 쌍방향으로 거미줄처럼 시신경이 더욱 발달하여 일반인을 엄청나게 능가하는 시력이 되는 것이다. 장님으로 태어나는 것이 전혀 장애가 아니라 더욱 능력 있는 사람으로 되는 것이다. 새옹지마가 아닐 수 없다. 20세기 지구에서도 70세에 걷지도 잘 못하던 노인이 꾸준히 운동을 하였더니 오히려 90세에 천천히 달리기가 가능해지고 뇌 속을 검사해보니 운동을 관장하는 뇌의 조직이 70세 보다 오히려 더 발달되어 있는 것이 발견되기도 했다. 장님이지만 인공으로 뇌신경, 시신경을 자극하고 더 시냅스가 연결되고 조직이 더 발달되어 기적이 일어나는 아니 노력에 의해 변하는 것이다. 허블시에는 장님이 없게 된다. 그것이 더 잘 성공하려면 900세에 시신경과 뇌의 연결이 0세에도 가능하게끔 연구하는 것이다. 900세를 앞당기자. 이것이다. 그러면 멀쩡한 사람이라도 이 방법을 통해 900세이거나 0세이거나 엄청난 시력의 상승을 해볼까? 일반적인 허블시의 시민들이 유혹을 느끼는 것이다. 진화를 해도 너무 큰 진화가 아닌지 두렵기도 할 것이다. 20세기에도 비행기 조종사는 안경을 통해 독수리의 시력을 가질 수 있다. 비행할 때는 필요하지만 지상에 내려오면 쓸모가 없긴 하다. 총각 장님 점쟁이는 자신의 성공사례를 통해 허블시민들을 더 생물적으로 잘 보이게 하는 일에 긍정적 힘을 보태고 있고 그 일을 하지만 마음으로 더 잘 보는 그런 시력을 마음의 시력을 높일 방법에 대한 일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마음이 밝아지고 더 하여 마음의 눈이 정확하고, 깨끗하고, 밝게 된다면 얼마나 허블시는 더 좋은 것이냐? 밤눈이 밝다. 마음의 눈이 밝다. 밝은 것은 좋다. 대서인도는 허블시에서 스스로의 시민이 더불어 좋게 되는 세상을 보게 되니 마음이 흡족하다. 그러나저러나 900세 총각이 장가를 가야 하는데 이게 또 문제다. 아직 노인이 되려면 50년이나 남았다. 950세가 되어야 노인이기에 그렇다. 마땅한 배필이 어디에 있나? 분명히 있을 것이다. 허블의 총각 장님 점쟁이는 오늘도 짝을 찾고 있다. 애타는 사연이다. 900년이나 그 외로움을 어떻게 달랬단 말이냐? 90년이 아니라 900년이라네. 인간의 수명이 천 년이 되니 천 년을 혼자 사는 이런 답답한 사연이 생긴다. 백 년이나 부모형제가 이별하여 살던 21세기였으나 천 년을 살게 되면 천 년을 부모자식이 이별하여 살게 되면 경우도 발생할 수가 있다. 이런 황당한 일이 있나? 대서인도는 해결할 방법이 있나? 문제가 생기면 인간은 문제를 해결하려고 고민한다. 고민거리가 없다면 인생은 너무 무미건조할 것이다. 고민은 불안이다. 인간은 원초적으로 불안하다. 아기를 낳은 어머니는 이 세상에 아기와 자신이 내던져진 채로 있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존재의 불안이다. 천 년을 혼자 사는 존재의 불안. 천 년의 시간이 너무 길다. 오래 사는 노인이 고독고를 견디지 못하고 힘들어 하는데 900년을 고독과 싸워온 총각 장님 점쟁이는 외로움이 아내이며 자식이었지 않을까? 그렇다. 내심의 잠재의식 속에 외로움은 사랑이고 기다림이고 친구이고 아내이며 자식이었다. 허블 망원경으로 허블이 137억 광년의 우주를 보면서 한 없이 작은 자신의 모습이며 이 거대한 우주에서 외로움이 대단했을 것이다. 137억 광년의 한 쪽 끝 900년을 혼자 사는 외로움이 오늘 따라 진하게 와 닿는다. 21세기 한국인은 137억 광년의 우주에 러시아의 우주선을 잠깐 빌려 타고 가 본 것이 전부이고 달에도 가본 적이 없다. 900년 동안 총각이라는 것이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즐거운 것도 아니다. 사실을 사실대로 받아들일 뿐이다. 137억 광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천 년이 긴 시간인데 광년이 나오니 만 년을 살아도 억울한 것인가? 사람의 수명이 우주 안에선 너무 짧다. 너무 너무 짧다. 그 짧은 900년에 왜 짝이 없었나? 그 짧은 행복이 없었단 것이냐? 늦기 전에 만들자. 그것이다. 늦지 않았다고 억지를 부린다. 늦지 않았다고 뇌를 세뇌시킨다. 사람에게는 때라는 것이 있고, 한계가 있고, 짧은 듯, 긴 수명이 있다. 천 년이 될수록 영원처럼 행복할 것 같았어도 힘든 900년도 있다. 외로운 900년을 지탱해준 것이 무엇일까? 궁금하기도 하다. 그냥 살았겠지.



베토벤시에는 처녀 귀머거리가 살고 있다. 300살인데도 시집을 가지 않았다. 총각 장님 점쟁이처럼 들리지 않는 귀에 인공 보청장치를 통해 청신경과 뇌를 자극하여 들리는 사람보다 오히려 나아진 상태다. 귀의 능력도 회복되고, 인공 보청장치의 힘도 보태지고 다른 능력은 초능력같이 더 발달되어 있으니 월등히 보통 사람보다 좋은 기현상이 현실로 되어 있다. 그러나 선입견으로 인해 장애인으로 여겨지는 한심한 경우다. 월등히 나아져 있으나 사람들이 인정하지 않는 사회구조로 인해 그렇다. 허블시의 900살 노총각과 무려 600살이 차이가 나는 결혼이 이루어진다. 여자 쪽에서는 50년을 살면 남편이 노인이 되고 50년이 더 지나면 과부가 되어 400살이 되면 앞으로 또 600년을 더 살면서 젊은 남편이건, 동갑이건, 늙은 남편이건, 혼자 살던지, 아이슬란드의 첫 여성 총리인 요한나 시거다도터처럼(66세) 레즈비언끼리 결혼할 지 알 수 없다. 하여간에 그 긴 300년의 외로움을 떨쳐버리고 100년 동안은 남자와 같이 살게 되니 행복한 마음이다. 300년 만에 찾아온 행복을 생각하니 남편은 900년 만에 느껴보는 것이라 생각하니 더 불쌍한 마음이 들고 잘해야 되겠다는 마음이 든다. 남편은 아내가 100년이 지나면 과부가 되고 50년이 지나면 노인을 돌보아야 하는 불리한 조건을 마다않고 자기를 선택한 아내에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느끼고 남은 100년을 헌신할 것을 다짐한다. 알고 보니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다. 정서적으로 안정이 되고 서로가 의지가 되고 이제는 정말로 정상적인 인간의 생활을 하는 것 같다. 예쁘고 귀여운 아기도 생기고 살맛이 난다. 2세의 출생은 더 더욱 두 사람을 사랑으로 엮어주고 행복하고 부지런히 살아가야 할 당위적인 명분으로 나타난다. 이젠 처녀가 아닌 아줌마가 되어 버렸다. 아줌마가 어머니가 아기가 있는 여자가 더 좋은 당연한 것을 300년이나 잊어버린 것이 아니라 편견과 어려움으로 인해 그렇게 지내지 못한 것이 아쉽지만 지나간 세월을 되돌릴 수는 없다. 앞으로 남은 남편과 100년을 나머지 600년의 세월을 행복하게 살면 된다. 태어나기는 장애인으로 태어나도 더 능력 있는 인간이 되는 기현상을 감당했지만 자식들이 그런 길을 가는 것을 원치 않는 모순된 감정과 마음이 있다. 능력 모자라게 되도 그냥 정상인으로 살길 원한다. 사람은 왜 특별난 것을 원하지 않을까? 왜 사람은 자신의 자식이 특별나게 재주를 많이 가지길 원할까? 모순된 생각을 부모는 많이 가진다. 평범하라고 해 놓고선 특별하기를 주문한다. 어린애는 이중가치를 인식하지 못하고 어리둥절 살다가 나이가 들수록 헷갈리고 상황에 따라 자기에게 유리한 쪽을 임시변통으로 써먹다가 복잡한 인간이 된다. 인간은 복잡하다. 카멜레온처럼 순식간에 변한다. 죽는 날이 100년 밖에 남지 않은 남편이 결혼을 선택하고 그 남편을 너무 좋아해 600살이나 많은데도 받아들이고 애를 생산하는 여인이 있다. 남녀는 붙어살기를 좋아한다.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이상하게 남자가 남자와 결혼하고 여자가 여자와 결혼하는 일도 많다. 인구가 30만인 작은 나라(아이슬란드)이지만 총리가 여자와 여자가 그것도 59세에(2002년, 현재는 66세) 결혼하여 7년이 되는 경우이다. 21세기에 59세에 여자와 여자가 결혼한다. 매우 늦은 결혼이다. 그러니 대서인도가 있는 우주의 나라에서 300살 여인과 900살 남자의 결혼이 성사되는 모양이다. 보이지 않는 도시와 들리지 않는 도시 허블과 베토벤은 공통의 분모가 있는 곳이다. ‘보이지 않는 것은 들리는 것이고 들리지 않는 것은 보이는 것’이다. 장님은 귀머거리이고 귀머거리는 장님이다. 남자는 여자이고 여자는 남자이다. 다른 것은 같은 것이고 같은 것은 다른 것이다. 섞어버리는 작용이 큰 힘을 에너지를 사랑을 만드는 것이네. 사랑이 화학반응처럼 무엇이 일어나네. 장애는 장애가 아니고 더 큰 능력이 된다. 인간의 약점은 개발하고 노력하여 더 큰 장점이 된다. 부부는 첫째와 둘째에게는 자신들이 사용한 인공안경과 보청장치를 이용하게끔 하지 않았으나 셋째와 넷째부터는 좋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이용하게 했더니 효과가 있다. 인공안경을 통하니 어린이의 독서능력이 열 배나 빨라져 지식습득이 너무 많아 천재가 된 것 같다. 보청장치도 이용하니 음악을 너무 잘하고 외국어나 언어습득이 매우 좋다. 가수, 언어학자, 통역, 학문 모든 분야가 좋아진다. 운동을 할 때도 더 멀리서 상대방의 동작을 미리 간파하니 대처를 잘하고 야구공이나 공이 날아오는 소리만 감지해도 어떻게 막아야 할지 알 수 있으니 운동도 전문선수를 능가하게 된다. 그러니 사용을 그만두지 않고 권장하게 된다. 대서인도 자신도 이들의 적응능력에 놀라워하고 여자 조수를 한 명 구해 장점과 보급할 계획을 세운다. 점점 사람들에게 홍보를 하니 그 유용성에 사용하는 사람이 늘어난다. 자꾸만 사용자가 늘더니 허블시와 베토벤시는 거의 이용하는 단계로 이행되고 제1인도양, 제1대서양에 많이 보급이 된다. 책을 통한 많은 지식이 재빨리 파악되니 학습의 양과 질이 많아지고 세밀해져 똑똑해지는 사람들이다. 대서인도도 조수 여인과 결혼하여 행복하고 자식들에게도 검증이 완벽하게 된 이 좋은 것을 사용하게끔 하니 운동, 외국어, 모든 공부 못하는 것이 없는 아이들이다. 대서인도는 모든 우주의 사람들이 사용하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대서인도의 후손들도 태어나니 저 멀리 지구의 지하국가11과의 끈이 더욱 탄탄해진다. 신문을 1시간 걸려 읽던 것을 5분, 10분이면 인공안경을 통해 빨리 읽으니 5가지에서 10가지를 읽으니 900년 동안에 9,000년 읽을 책을 읽는 꼴이니 그 능력이 상상하기 힘들 정도이다. 거기다가 얇은 컴퓨터 옷은 날아다니기까지 해 줄 정도로 인간의 능력을 키워주니 서로에게 입소문으로 좋은 것이 전달되고 보급된다. 보급의 속도도 무척 빠르다. 총각 장님 점쟁이와 처녀 귀머거리가 세상을 바꾸어 버렸다. 사람을 슈퍼맨에 이르도록 해버렸다. 시각은 정보를 청각은 운동능력을 시청각은 종합적인 능력을 무한대는 아니나 기하급수까지는 아니나 매우 높여준다. 용량이 과다한 정보를 어린이가 뇌를 통하여 받아들이면 부작용이 일어나지 않을까? 걱정을 했지만 그 많은 것을 어린이가 자기에게 필요한 부분만 가공하여 사용하니 모두 다 이용하지 않으니 큰 어려움은 없다. 자기가 제어할 수 있는 만큼만 활용하기 때문이다. 능력이 전문화되면 거기에 합당하게 조절해주는 뇌의 용량확대, 조절 체계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니 혼란이 일어날 것이란 기우는 사라졌다. 각 개인의 두뇌 속의 역량이 도서관을 가지고 있는 정도들이다. 필요할 때 꺼내서 쓰면 된다. 어린이가 과거 대학교수의 토론을 해내는 것이다. 어른은 그 이상의 일을 해낸다. 자꾸 발달하면 시청각 보조용품이 아니라 뇌기능 향상 보조용품이 일반화되면 지금보다 더 진화하게 된 사람들이 될 것이다. 당연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너무 능력이 뛰어나 어리둥절한데 뇌까지 어마어마하게 나아진다니 그러면 인간이 아니고 신이 된다는 것이냐? 미개한 인간의 과거를 비춘다면 새로운 인간은 신이 행하는 일을 하는 정도일 것이다. 뇌가 춤을 춘다. 뇌가 웃는다. 뇌가 미치도록 기뻐한다. 뇌가 천지개벽을 한다. 그럴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미 예상답안을 알고 있다. 너무 과하지 않나? 속도를 늦추는 것이 자연적이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일게 된다. 상전벽해가 너무 요란하니 조용하고 싶은 인간이다. 대서인도는 조상의 고향으로 간다면 이 모든 것을 알차고 무리 없이 깔끔하게 적용하도록 머릿속에 순서도를 차곡차곡 짜고 있다. 그냥 그대로 작동방법이 머리에 저장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계속 추진하고 해오던 일이고 보이고 들리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안 보이고 안 들리고 안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너무도 당연하고 쉽게 몸에 배어 있으니 무척 쉽다. 습관은 자신이 사는 현실이니 말이다. 사람은 이로운 것을 자기 몸에 잘 받아들인다. 각 개인의 변화가 모이니 세상이 변하는 것이다. 틀이 순식간에 바뀐다. 백 년이나 천 년을 인간을 다른 사람과 격리시켜 놓으면 엄청나게 다른 모습으로 보일 것이다. 적응력이 빠르려면 융통성이 있는 쪽이 유리하다. 지리적이나 정치적으로 사람이 많이 왕래하는 반도나 수도나 그런 곳이다. 허블시와 베토벤시는 가장 변화를 잘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기에 발전이 더 빠르다. 이 놀라움이 두 도시를 통한 것이고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 부부의 공로가 크다. 대서인도는 부인이 고맙다. 자신의 뜻을 잘 따라주고 일을 같이하고 예쁜 아기들도 낳아주어 사랑스럽기 그지없다. 부인도 자신을 사랑하고 사랑하는 것이고 앞으로도 사랑이 계속될 것 같다. 대서인도는 자신이 뼈대 있는 왕족이었음을 잊을 때도 있지만 생각해볼 때도 있다. 과거가 없어지지 않으니 말이다. 아주 나쁜 과거도 잊어버리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대부분 사람들은 좋지 않은 기억은 지우려한다. 허블시가 안 보이는 것도 보는 곳이기에 이런 것을 많이 경험하는 곳이다. 우주에 무엇이 보이나? 보려고 하지 않으면 보일 것이 없다. 보려고 하는 사람은 너무 볼 것은 많고 조금밖에 보지 못해서 안달이다. 베토벤이 하던 일이 음악이니 들리지 않아도 그가 하던 일을 계속한 것이다. 대서인도도 선조가 왕족이었으면 그런 합당한 일을 했거나 억울하게 죽기도 했고 지금은 그가 사는 방식이나 가치관에 따라 자신에게 맞는 일을 골라 그렇게 사는 것이다. 대서인도를 따르는 사람이 많다. 성공과 희망의 일을 많이 만들어준 일이 원인이다. 인간에 대한 좋은 일을 하다가보니 덤으로 생긴 수확물이다. 대서인도가 아는 사람들은 천 년을 산다. 지식은 9,000년 분량을 가지고 있다. 초능력을 구사하는 신체적 능력도 있다. 이들의 무리는 우주 속에서도 발달된 종족으로 치부될 수도 있다. 발달이 덜 지역으로 이동하여 그곳을 발전시키면 저절로 상층부의 지도자들이 된다. 억지가 아니라 객관적 실력이 말해주기 때문이다. 남모르는 고통도 있을 수 있다. 천 년이나 독신으로 산다던지 9,000년 분량의 지식을 서로가 공유하거나 말을 주고받을 수 없으면 그것도 괘 힘든 일이다. 머릿속은 박사이나 어린 아기의 옹알이를 하는 일을 천 년이나 하려면 그 어려움도 크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로 하면 그 답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독신을 피하거나 독신이지만 외로움을 없애는 방법을 찾아내면 된다. 어린 아이의 옹알이를 하지만 그들과는 옹알이지만 그와 동시에 옹알이가 두 가지 세 가지 열 가지 언어를 동시에 내는 방식으로 만들어 한 마디 옹알이로 말하면 상대방은 한 가지 언어로 반응하나 자신을 그것이 열 가지 언어로 동시에 느끼고 이해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마마하고 어린 아기가 옹알이를 하면 그는 마마하면서 마덜, 무터, 등등 열 개 나라 말로 머릿속을 동시에 움직이는 것이다. 순간적으로 열 개 언어의 단어가 떠올라야 하는 것이다. 그런 방식으로 말이 통하지 않는 천 년을 견디는 것이다. 독신의 문제는 얼른 답이 떠오르질 않는다. 강이나 산을 아름다운 여인으로 생각하나? 구름과 달을 애인으로 여기나? 감이 잘 오지 않는다. 강을 부인으로 여기고 산을 아들로 달을 딸로 구름을 친구로 천 년을 버텨나가는데 미친 사람 같으나 미치지 않으려 노력하는 가운데 나온 방법이다. 저 흘러가는 강이 나의 부인이요. 저 든든하고 믿음직스러운 산이 나의 아들이요. 탐스럽고 귀여운 달이 내 딸이요. 구름은 나의 절친한 친구라네. 그런 놀라운 방법인지 엉뚱한 방법이 있다. 그러면 부는 바람은 무엇으로 할 것이오. 글쎄, 생각 좀 해봅시다. 바람은 자연의 바람이라고 해도 상관없을 것 같네요. 겨울바람은 춥고 봄바람은 따뜻하고 가을바람은 선선하고 여름바람은 덥다. 춤바람은 신나고 신바람도 신나고 남편이나 아내가 바람나면 큰일이고 노인이 바람이 들어 뇌졸중이라면 반신불수가 될 수도 있다. 바람은 기후조건인데 인간은 의복이나 여러 가지 방법으로 바람을 극복하고 있다. 바람도 태풍이면 무서운 것이지만 바람을 무엇으로 하면 인간과 친하고 좋은 것이 될까? 바람과도 인간은 교감을 할 수 있다. 바람은 인간을 알 것이 아닌가? 그렇지 않은가? 대서인도는 또 바람을 이해해야 하나?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바람이 일면 많은 무리가 일으키는 바람이 거세진다면 말이다. 고향으로 향하는 바람은 태풍이 될 것이고 태풍은 일을 내고 말 것이다. 대서인도가 이룩한 이 땅의 발전도 신바람이 이루어낸 것이다. 처음에는 속도가 느렸으나 신바람에 순풍이 불자 일이 너무도 매끄럽게 진행되었던 것이다. 그러네. 바람을 잘 타야 하네. 세상의 흐름을 잘 읽고 바람을 잘 타면 인생이 잘 나아간다. 역풍에 시달리면 아무리 노력해도 효과가 작다. 배도 바람을 잘 알아야 바다를 다닐 수 있다. 역풍을 순풍으로 태풍의 바다를 잔잔한 바닷바람으로 바꾸는 요술을 부리면 대단한 인간이 아니냐? 바람은 분다. 대서인도는 바람을 잘 타고 왔다. 그 잘 타는 바람이 계속되어야 한다. 대서인도의 무리들은 자신이 있다. 실력이 있다. 자신과 실력은 변화의 바람을 요구한다. 실력은 행동을 요구한다. 그래서 그들이 온갖 곳으로 진출하길 원하지만 무엇보다 고향인 지구로 가길 원하는 것을 반영하여 지구에 정착하여도 문제가 발생하지 않게끔 대서인도가 거주하는 곳에서 거주실험과 안전의 문제를 우선 적용하여 적응을 해보기고 한다. 지구가 오히려 여기보다 좁은 곳이니까 지구의 형편에 맞게 적은 지역을 정하여 지하 22층 십 미터마다 1층으로 정하여 지하 220미터에 터를 잡고 층마다 건물이 5미터를 차지하고 5미터는 원래 지형을 그대로 두고 파내기는 사용면적의 삼분의 일만 파내고 삼분의 이는 지지역할을 하도록 그대로 둔다. 22층의 층마다 일직선으로 연결되지 않고 엇갈리게 하여 수직으로 압력을 덜 받고 수평으로 힘이 분산되게끔 했다. 파낸 흙을 이용하여 지상에도 건물을 지어 활용도를 높였다. 계속 시공하여 실제로 사용하여 보고 지구와 조건이 더 정확하게 맞도록 해보고 대서인도는 이런 형태의 거주공간을 지구에 확보하기 위해 지구의 지하국가1 대오왕의 후손에게 협조를 요청한다. 그랬더니 상대방에서도 똑같은 요구조건을 제시한다. 우리만 일방적으로 손해를 볼 수 없으니 자신들이 제공하는 땅만큼 내지는 좀 더 넓은 땅을 대서인도의 땅 중에서 달라는 것이다. 주고받는 것이 정상이긴 하다. 우주의 땅이 더 넓은 것도 사실이고 문명의 수준도 훨씬 발전한 선진국인 대서인도가 더 베풀어야 거래가 성사될 수 있다. 되돌아 지구로 가려니 대가가 만만찮다. 되레 지구의 사람들이 실험용으로 만든 곳에 오고 싶어 하고 그 넓이를 거대하게 넓혀야 하는 역반응이 생긴다. 협정이 체결되면 지구에 거주를 위해 공사를 해야 하고 대서인도의 땅에 오는 지구인은 오히려 땅이 넓어서 그냥 거주할 수도 있다. 셈을 해보니 크게 남는 장사는 아니나 지구를 다시 만날 수 있고 영원히 확실하게 연결고리를 통해 거점이 공고해지고 앞선 새로운 문명을 이식하여 지구를 좌지우지할 수도 있다. 목표는 좌지우지이나 그전에 모든 합법적인 절차를 거쳐야하는 외교적인 문제, 서로의 생존의 문제가 걸려 있다. 좁은 땅이고 지하로 기어들어가야 하고 모든 선진적인 것들을 무료로 가르쳐주어야 하고 그런데도 돌아가려는 것이다. 돌아가서 그곳도 천 년을 사는 땅으로 변모시키고자 하는 열망이 있기 때문이다. 사는 방식대로 살게 되면 되는데 지구의 지상국가1 사람들이 거부반응을 줄이면서 서서히 아니면 재빨리 받아들이면 똑같이 천 년을 살고 엄청난 종족으로 변신이 되는 것이다. 변신을 도와주려는 선의적인 집단이 있으므로 발전은 당연히 일어날 수 있다. 변화의 회오리가 다음에 나타날 사회의 분위기임을 알 수 있다. 움직이는 인간, 바뀌는 인간, 그런 인간의 특징과 아울러 세상은 달라짐을 알고 있으나 변화에 대해 저항하는 기운도 만만하지 않다. 과거 한국에서 두 번이 나 수도를 옮기려 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서경으로 묘청의 무리가 천도를 시도했으나 실패했고, 광해군이 파주로 한양을 옮기려 했으나 실패했다. 그러나 지금의 세상은 너무도 쉽게 우주로 다시 지구로 돌아다니는 세상이니 천지가 개벽을 하고도 수십 번을 반복한 셈이다. 새로운 세상을 만들려는 마음속의 바람들이 결국은 그림을 만들어내고 변화를 이끌어낸다. 변화를 추구하는 세력이 월등히 우위의 집단이니 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게 된다고 추정하기가 어렵다. 결국은 세상이 달라지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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