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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 KNA여객기 '창랑호' 피랍

납북된 '창랑호'의 모습.
1958년 2월 16일 오전 11시 30분 부산수영비행장을 이륙한 대한민항공사(KNA) DC3형 경여객기가 여의도 공항에 도착할 무렵 승객을 가장한 납치범들에 의해 납북됐다. 여자 2명을 포함 총 6명인 납치범들은 KNA기를 평양 순안비행장에 강제 착륙시켰다.


납치범들은 비행기가 경기도 평택 상공에 이르렀을 때 탑승객 중 군인 2명의 머리를 망치로 내리쳐 실신시킨 다음 칼빈총과 엽총을 기내 앞뒤에서 발사하면서 조종사를 협박, 기수를 평양으로 돌리게 했다.


피랍기의 조종사는 미국인 윌리스 P홉스, 부조종사는 미공군의 맥클레렌 중령이었다. 피랍후 송환된 탑승자 가운데에는 국회의원 유봉순과 공군정훈감 김기완 공군대령도 포함돼 있었다.


우리 정부는 2월 20일 북한 공작원 김택선 등 3명을 납치범으로 발표했고, 25일에는 사건 배후로 기덕영 등 3명을 체포했다. 북한은 "KNA기가 '의거 월북'했다"고 선전했지만, 유엔 군사정전위원회는 2월 24일 북측에 승객ㆍ승무원과 기체를 즉시 송환할 것을 강력히 요구했다. 우리 국회는 2월 22일 북한 만행을 규탄하는 메시지를 16개 6ㆍ25 참전국에 보냈다.


당시 북한은 저우언라이 중국 총리의 방북을 앞두고 '남한 비행기가 자진 월북했다'는 체제 선전을 위해 납치극을 꾸몄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북한은 승무원 4명과 승객 28명, 납치범 6명 등 모두 38명 중 탑승자 26명만을 3월 6일 판문점을 거쳐 송환했고 기체는 역류했다. 그리고 나머지 6명은 북한으로 귀순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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