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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일본 '2ㆍ26사건' 발발

2.26 쿠데타 당시 국회의사당을 지나
가고 있는 반란군 부대.
1936년 2월 26일, 22명의 황도파(皇道派) 청년장교들이 1,400여명의 사병들을 이끌고 '국가의 전면적 개조'와 '군사정부 수립'을 요구하며 쿠데타를 일으켰다. 이른바 '2ㆍ26 사건'이었다.


장교들은 내각을 습격, 다카하시 대장상과 사이토 내무대신, 와타나베 교육총감 등을 살해하고 수상관저와 의사당, 육군성을 포위했다. 27일에는 도쿄에 계엄령이 시행됐고, 28일에는 이들에게 '원대복귀' 명령이 내려졌다. 29일에는 2만4천여명의 군병력이 이들을 포위, 선무방송과 비라살포를 시작했다.


자신들이 천황에 의해 반란군으로 단정했다는 소식에 동요하기 시작한 사병들은 대부분 원대복귀했으나 장교단 중 나카야마 대위는 책임을 지고 권총으로 자살했다. 다른 청년장교들은 무장해제된 후 체포돼 법정에서 13명의 군인과 4명의 민간인이 교수형에 처해졌다.


'2ㆍ26사건'은 육군 내부에 존재해 온 두개의 파벌이 원인으로 작용했다. 전쟁준비를 위한 국내체제 확립과 고도의 국방국가실현을 목표로 하는 '통제파'와 관념적 행동방식에 의한 국가 개조를 계획하는 '황도파'가 이들이다. 통제파가 주로 참모본부, 육군성 등 중앙의 참모장교로 이루어졌다면, 황도파는 위관급의 청년장교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었다. 1933년, 천황은 국가통치권의 주체가 아니라 국가에 속하는 최고기관으로 통치권을 행사할 뿐이라는 '천황기관설' 논쟁이 발단이 되어, 통제파가 황도파를 요직에서 내쫓으려 하자 두파의 싸움이 격화되어 이날의 '2ㆍ26 사건'이 일어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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