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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3월 8일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의 주범 김현장과 문부식에게 사형이 선고됐다. 이 사건은 그 당시 반미운동의 무풍지대로 인식 되어온 남한에서 돌발적으로 일어났다는 점에서 미국은 물론 온 국민을 충격 속에 몰아 넣었다.
이란 정부가 1989년 3월 7일 샐먼 루시디의 소설 '악마의 시'와 관련, 이 작품의 출판금지를 거부한 영국과의 외교관계를 단절한다고 발표했다. 이란 정부는 영국측에 이 문제에 관해 입장을 밝히도록 요구한 시한인 1주일이 지났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녹색당은 1970년대 반핵운동을 주로하는 시민단체 '녹색단체'를 모체로, NATO가 소련의 SS-20에 대항하기 위해 중거리미사일을 유럽에 배치키로 결정한 1980년 1월에 정식으로 발족했다. 이번 선거로 연방의회에 들어가게 된 35세의 반전-반핵운동가 켈리는 '군비확장경쟁은 반드시 인류의 종말을 가져올 것이다'라는 주장을 펼쳤다.
거창양민 학살사건 국회 조사단 방해 책임자였던 김종원(별명 백두산 호랑이)은 약 20분간 저격사건 피고들인 이덕신 최훈 김상붕 등이 자기를 근거없이 사건관련자로 끌어들이고 있다고 비난하며 판사를 향해 "공정한 재판을 하시오" 노발대발 고함을 쳤다.
한국 공군의 창설의 산파역이자 최초의 전투기 조종사였던 김영환 공군 준장이 1954년 3월 5일 F-51 전투기를 몰고 사천기지에서 강릉기지로 향하던 중 악천후 때문에 34세의 일기로 순직했다.
국민생활의 합리화를 가하고 허레허식화된 가정의 전통적 폐습을 바로잡기 위해 정부가 마련한 가정의례준칙(전문71조 부칙2항)이 1969년 3월 5일 대통령고시로 선포됐다.
조선일보의 탄생은 1919년 3ㆍ1운동의 피로 얻은 우리 민족의 성과였다. 우리민족의 독립의지에 놀란 일제는 조선 통치 정책을 종래의 가혹한 '무단정치'에서 '문화정치'로 전환했고, 조선인의 민간 신문 발행도 허가했다.
사고 후 앰뷸런스 등 응급차량들이 공항 외곽 거리에 쓰러져 있는 사상자들을 병원으로 후송했으며, 경찰은 즉각 공항을 폐쇄했으며 무장군인들이 경계를 섰다.
타임은 타임 외에 라이프, 포천,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피플 등의 잡지류로 전세계에 총 3천만부의 발행부수와 1억 2천만명의 독자를 자랑하고 있다.
1973년 3월 4일 새벽 제주도 동쪽 3.5㎞해상에 있는 우도에 무장간첩이 출현, 해조건조장 경비원 1명을 사살하고 도주했다. 대간첩대책본부에 의하면 3월 4일 0시30분쯤 우도에 나타난 무장간첩들은 순찰중인 해조건조장 경비원에게 암호와 '동무'라는 용어를 사용, 경비원이 대답을 하지 않자 5m거리에서 사살했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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